친한 페친의 사모님과 어느 날 친해졌다.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채로 우정을 키워가고 있다. 내가 적은 글을 매일 보내드리고 서로의 일상과 마음을 나눈다. 어느새 고민 상담도, 살뜰한 격려도 우리에겐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이런 고마운 인연들. 나는 그분들을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내 글을 받는 분들은 하나같이 그 글을 고이 간직해주신다. 어떤 분은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겠다며 정성스레 답장을 보내주시고 어떤 분은 눈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해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누군가에게 말없이 다가가는 문장이 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은밀하고도 깊은 사랑의 방식이다.
“…글을 참 잘 쓰는 건 인정.”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멈칫했다. 그 짧은 문장 한 줄. 그 뒤에 아무 말도 없었다. 마침표 하나로 끝나버린 그 말 앞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마음을 꺼내 보이려 애썼는지 문득 가슴이 아려왔다. 얼마나 조심스레 단어를 고르고 가슴을 내어주며 문장을 엮었는지 그 모든 애씀이 덧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마음조차 짓밟힌 기분이 들었다. 인정이라는 말이 너무 낯설게 차가웠고 그날의 침묵은 오히려 내 진심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더 아팠던 건, 내가 이 글을 인정받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싶어서, 그저 조용히 마음을 건네고 싶어서 썼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단 한 줄의 인식, 그리고 조용한 단절. 그래서 나는 더 조용히 더 깊이 마음을 써 내려간다. 인정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차가운 칼날을 나는 부드러운 숨결로 감싸고 싶었다. 마치 진짜 사랑은 칭찬이 아니라 함께 가만히 앉아주는 것이라는 걸 말하듯이.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어느 날 눈을 감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등불 하나 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문장이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한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 온기는 사실 내 것이 아니다. 나도 자주 허기지고 외로워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온기를 조금씩 길어올린 것일 뿐이다. 어쩌면 어떤 사람은 글을 보고도 마음을 닫고 돌아설지 모른다. 그럴 땐 나는 조용히 문 앞에 손편지처럼 글을 두고 온다. 바람결에 흩날리지 않도록 살짝 돌멩이를 얹어두고 돌아선다. 그 편지를 다시 펼쳐보는 날이 올지 안 올지는 그 사람의 몫이니까. 나는 다만 그가 너무 멀리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 피었던 감정이 완전히 죽어버리기 전에 그 안의 따뜻했던 기억만큼은 놓치지 않기를.
나는 지금도 매일, 누군가의 안부를 글로 묻는다. 그 글은 때로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고 더는 닿지 않는 이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다른 누군가의 심장을 흔들 수도 있다. 그 흔들림이 언젠가 그 사람을 자기 자신에게로 데려다 주기를. 그 사람 스스로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나는 그런 바람을 안고 오늘도 한 줄을 더 써내려간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진다면, 이 글은 그 자체로 기도이므로…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닿아, 아주 작은 숨소리처럼 머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