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오래 제주에 살지 몰랐어요.”
“나도 그렇게 오래 그곳에 사실 줄 몰랐는걸요.”
“아… 그랬네요.”
잠시 고요가 흘렀다.
차잔 위로 피어오르는 허브 향이
마음 한 켠을 쓸어내리고
눈앞의 딸기 타르트는 붉게 빛났지만
그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온 건
서로의 시간 속에 깃든 무심한 체류였다.
누군가는 단 하루도 머물기 힘든 땅에서
어느새 몇 해를 살아냈고
누군가는 잠시 머무르다 가려 했던 마음이
알지 못한 사이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이곳이 꼭 나를 기다린 것 같았어요.”
“그대도요?”
우리는 웃었다.
뜨거운 차 한 잔 사이로 흐른
이 짧고 조용한 인연의 인정.
그건 어쩌면, 잊고 있던 마음의 귀향이었다.
“구 년이나 제주가 날 품어주고 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죠.
혼자였지만 결코 외롭지만은 않았고
때로는 바람이 벗이 되어주었고
때로는 고요한 바다가 내 말을 대신해주었어요.
그리고 그 긴 시간 속에, 나도 어느새
제주라는 품 안에 조금씩 스며들어 있었던 거죠.”
“이제는 내가 떠나는 게 아니라
제주가 내 안에 살고 있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혹시 내가 아니라 제주가 날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떠나려 하면 꼭 누군가가 찾아왔고
지치려 할 때면 길가의 돌담 하나가
괜찮다고, 아직 너 여기 있어도 된다고
속삭여주는 듯했으니까.
참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보다 먼저 위로받는 땅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위로를 건네는 누군가가
어느 날은 낯선 이였다가
어느 날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삶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시작되고
예정되지 않은 마음에서 오래 머문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시간이란 어쩌면 장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나를 내어준 기억에 머무는 것이라고.
제주라는 땅이 나를 품어준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그 품을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나다워질 수 있었던 자리를
감히 외면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
‘오래 머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곳은 성소가 되고,
그 시간이 곧 기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요히 앉아
구 년의 시간에 감사를 건넨다.
떠난 이에게도, 스쳐간 이에게도,
그리고 여전히 나를 기다려주는 이들에게도.
그대, 오래도록 머물러준 모든 것들이여.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