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대하여

by 마르치아


어느 날은 바람조차 조용히 스쳐간다. 나뭇가지 끝에 맺힌 햇살이 말을 잃은 듯 고요하고 마음속에도 한 줄기 적막이 길을 낸다. 세상은 수많은 말들로 채워지지만 때로 말 없는 순간이 더 많은 것을 전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 침묵에 대하여 말해보고 싶어진다.


인간은 본래 말하는 동물이라 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며 살아간다. 사랑을 말하고 분노를 말하고 슬픔을 말한다. 누군가는 하루에 삼만 마디의 말을 하고 또 누군가는 말로 다하지 못한 것들을 밤마다 혼자 안고 잔다. 어쩌면 인간은 말을 쏟아내지 않으면 무너져버릴지도 모르는 그런 허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진정 강한 사람은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삼킬 수 있는 이,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진심을 말로 풀어내려 애쓰지 않는 이, 그래서 그 존재 자체로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람. 그런 이가 진짜 사랑을 아는 자라 믿는다.


이모는 그러하셨다. 말씀은 적으셨고 웃음은 깊으셨다. 늘 어깨 너머로 차를 따르시며 내게 하셨던 유일한 말은 “천천히.” 어떤 날은 손으로만 눈짓으로 말씀하셨고 또 어떤 날은 말 없는 그 존재가 나를 가장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나는 여섯 살 무렵 이모의 묵언을 흉내내며 하루를 말 없이 보낸 적이 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침묵은 때로 가장 정직한 말이다. 말은 때로 모양을 꾸며내고 침묵은 그 꾸밈을 벗겨낸다. 말은 때로 상대를 설득하려 하고 침묵은 그저 함께 있으려 한다. 그래서 침묵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법이다. 눈빛 하나, 숨결 하나, 어깨를 내어주는 그 작은 순간 속에 우리는 가장 진실해진다.


하지만 침묵을 견디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은 이해받고 싶은 욕망의 동물이며 이해받기 위해 말하게 된다. 침묵을 두려워하고 오해를 감당할 용기를 갖지 못한 채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린다. 때로는 그 말이 사랑보다 앞서 상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말이 침묵보다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연습한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을 때 침묵하는 법, 설명하고 싶을 때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법, 내 편을 만들고 싶을 때 혼자 견디는 법. 말 대신 손을 잡아주는 법, 말 대신 기다려주는 법.


모든 관계는 말보다 침묵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어쩌면 진짜 사랑은 침묵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설명 없이 이해받는 관계, 질문 없이 신뢰하는 사이, 그런 침묵 속에 피어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견고하고 가장 아름답다.


오늘도 나는 길을 걷다 발끝에 닿은 작은 돌멩이에게 말을 건다. “그대, 아무 말 없이도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 그리고 마음이 시끄러울 땐 조용히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입술 대신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건 언제나 가장 오래 기억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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