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共鳴)에대한생각

by 마르치아


"존재가 존재를 알아보는 순간, 말보다 먼저 울리는 것이 있다.


그 떨림은 소리보다 빠르고, 의식보다 깊다. 우리는 그것을 감지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알아차린다. 그 울림은 인위로 만들어낼 수 없으며 억지로 끌어낼 수도 없다. 존재가 존재를 향해 열릴 때, 그 사이를 가로질러 나오는 미세하고도 분명한 진동. 그것이 바로 공명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인간 존재의 심층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이 보이지 않는 울림의 실체를 발견했다. 그는 모든 인간이 개인적인 무의식을 넘어 깊은 층위에서 하나의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 집단 무의식은 단순한 심리적 저장소가 아니라, 생명의 흐름과 세계의 본질을 공유하는 심연이며, 공명이란 바로 이 깊은 차원에서 일어나는 떨림이다. 두 존재가 마주할 때, 겉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무의식은 알아차린다. 서로의 고요와 숨결이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이 교차하고 울린다.


융은 또 말했다. 진정한 만남은 두 개의 무의식이 서로를 건드릴 때 일어난다고. 우리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어떤 사람에게 끌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어떤 풍경 앞에서 발을 멈춘다. 어떤 음악은 한순간에 마음을 무너뜨리고, 어떤 눈빛은 이름도 없이 오래도록 가슴속에 머문다. 그 모든 순간에 공명이 있다. 공명은 삶이 우리를 건드리는 방식이며, 우리가 세상과 다시 이어지는 방식이다.


공명은 관계 속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명은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이나 취향의 일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와는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말없이도 서로를 이해하고, 어떤 이와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도 끝내 마음이 닿지 않는다. 공명하는 관계는 억지로 가까워지려 애쓸 필요가 없다. 이해하려는 수고보다 먼저 서로를 이미 알고 있다는 깊은 신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설명하지 않아도 느끼는 것, 그것이 공명하는 관계의 신비다.


시간에도 공명이 있다. 모든 시간이 같은 울림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간은 무심히 지나가고, 어떤 시간은 평생을 흔든다. 시간이 길다고 해서 깊은 것도 아니며, 짧다고 해서 가벼운 것도 아니다. 어떤 순간은 잠시 스쳤을 뿐인데 오래도록 심장의 가장 깊은 곳에 남아 세월을 흔들고, 어떤 순간은 평생을 함께했어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공명하는 시간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듯한 하루에도 떨림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뜻밖의 오후, 고요한 새벽, 스쳐간 말 한마디 속에도 생명의 울림은 숨어 있을지 모른다.


장소에도 공명이 있다. 어떤 공간은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나를 숨 쉬게 하고, 어떤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나를 밀어낸다. 공간의 차이는 단순히 풍경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그곳을 스쳐간 시간들, 그곳에 머물렀던 영혼들, 그 침묵의 깊이와 결이 우리 안에 파동을 일으킨다. 오래된 골목길, 황혼이 내려앉은 들판, 누구도 없는 새벽의 공원 같은 곳은 풍경이 아니라 존재로서 나를 울린다. 그런 공간 앞에서는 나 자신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된다. 그 공간이 품은 시간과 영혼과 기억이 나를 조용히 감싸 안기 때문이다.


공명은 우리를 진짜로 살아 있게 한다. 관계가 공명을 통해 생명을 얻고, 시간이 공명을 통해 기억이 되며, 공간이 공명을 통해 이야기가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화려함을 넘어, 공명이 없는 삶은 결국 공허하다. 아무리 많은 말을 주고받아도 서로의 영혼을 울리지 않는 관계는 속절없고, 아무리 긴 시간을 함께 보내도 울림 없는 시간은 기억으로 남지 않으며, 아무리 아름다운 장소라 해도 공명이 없는 공간은 우리의 존재를 품지 못한다.


나는 이제 안다. 억지로 관계를 이어가려 하지 않아야 하며, 울리지 않는 시간에 매달리지 않아야 하며, 나를 잊게 만드는 공간에서 서둘러 떠나와야 한다는 것을. 심장이 떨리는 방향으로, 영혼이 울리는 쪽으로, 나는 걸어야 한다. 그 길이 외롭다 해도, 그 길이 낯설다 해도, 결국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공명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떨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 아닌 것과 내가 서로를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와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너는 떨리고 있는가. 지금 너는 살아 있는가.


나는 대답하고 싶다. 나는 듣고 있다. 나는 떨리고 있다. 나는 오늘도 공명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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