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go di Lomellina

존재에대한대화

by 마르치아


로멜리나 호수에 도착했을 때 나는 먼저 물의 침묵을 느꼈다. 그날의 고요함은 마치 오래된 기도 같았다. 호수 주변엔 키 작은 풀들과 봄의 끝에서 여름으로 건너가려는 나뭇잎들이 자라고 있었다. 물가 근처엔 말라붙은 갈대 몇 줄기가 바람에 기울어 있었고, 그 사이로 새 한 마리가 낮게 날았다. 물 위에는 오후 햇빛이 오래 머물러 윤슬을 만들고 있었고, 어디선가 느리게 익어가는 흙냄새가 났다.


멀리 포도밭이 그려낸 완만한 언덕이 흐릿하게 이어졌고, 마치 누군가 오랫동안 이곳을 아껴두고 있던 것처럼 고요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날의 하늘은 짙지 않았고, 무언가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듯, 온 세상이 호흡을 가늘게 낮추고 있었다.한참을 그 물가에 앉아 있었고 호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잔물결 너머로 오래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사람은 언젠가 사라질 존재라는 걸 이 호수는 알고 있는 걸까. 나는 그가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느껴왔는지 갑자기 궁금증이 일어났다. 그는 이토록 존재라는 감각에 마주 서 본 적이 있을까. 나는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라 참지 못했다. 나는 말문을 열어야 했다. 나는 지금 내 이성과 영혼의 떨림을 이야기해야만 했다.


“혹시 존재에 대해 고민한 적 있어요?”


나에게서 쏟아져 나온 그 첫 질문으로 그가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평소에 이런 대화를 즐겨 했다. 그도 나도 이런 질문과 토론을 좋아했다. 호수에는 윤슬이 일렁거렸고 마치 내 영혼을 반영하듯 아름다움으로 반짝였다. 그는 잠시 시선을 호수에 두고 있었다. 말을 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아주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있어요. 가끔 너무 조용한 밤이면 내가 정말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내 안에서 문 하나가 열려요. 그 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내가 있고 그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있죠. 그럴 땐 존재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미를 남기고 있는 흔적 같아요. 그래서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애써요.”


그의 대답은 늘 정직해서 담백해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여운을 따라 내 안에 남아 있던 또 하나의 물음을 꺼냈다. “그러면 우리는 존재 너머로 서로 왕래하는 건가요?” 그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봤다. 그 왕래라는 단어가 걸린 걸까. 이 지점에서 나는 숨이 멎었다.


잠시 후 그는 나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왕래라는 표현보다는 향유라고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듣고 싶었다. “왕래라는 말엔 어디론가 다녀오고 또 떠나야 한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하지만 향유는 그저 머무는 거예요. 상대 안에 내가 잠시 머물고 그 사람의 온도 안에 내가 스며드는 것. 사랑도 존재도 그렇게 조용히 스며드는 거면 좋겠어요. 굳이 다녀가지 않아도 그저 마음속에 머물며 그 사람의 일상에 한 방울씩 녹아드는 것. 그걸 나는 향유라고 느껴요.”


그는 날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웃음은 마치 우리의 존재가 각자 빛나는 별이지만 상대의 반짝임을 위해서 한 템포씩 스스로 어둠이 되어주는 별 같았다. 우리는 말을 멈췄다. 대화는 거기까지였지만 더 이상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날의 하늘은 짙은 푸름 위로 구름이 천천히 흘렀고 호수는 마치 모든 이야기를 품은 채 조용히 흔들렸다. 나는 그 순간을 온전히 향유하고 있다는 감각에 머물렀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 질문에 대답했고 나는 나의 존재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나의 존재는 더 이상 누군가의 시선에 기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나를 말하고 있었고 그는 조용히 나를 듣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갈망했던 존재의 방식이었다.


삶은 종종 침묵을 통해 말한다.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 견디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던 나날들.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감정들. 나는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누군가와 함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호수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는 물살이 거세고. 어떤 이는 너무 얕고. 어떤 이는 말라가지만 그 안에 깊은 기억을 담고 있고. 그리고 나는 그 호수에 마침내 누군가를 들일 수 있을 만큼 조금은 잔잔해진 사람이다.


그와 함께했던 그날 우리는 말을 멈춘 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의 존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무언가를 소유해서가 아니라 누구 안에 머무를 수 있다는 감각. 그 존재 안에 내가 녹아 있다는 믿음이 나를 처음으로 가볍지 않게 만들었다. 그는 나의 존재를 증명해주려 하지 않았고 나는 그의 빛을 질투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호수 가장자리에 앉아 그저 함께 물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세상과 완전히 화해하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들. 잊히는 것들. 그리고 끝내 닿지 못했던 마음들까지. 그 모든 것을 품고도 나는 거기 있었다. 희미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은 아주 정확한 온도로.


이제 나는 누군가를 향해 내 안의 공간 하나쯤은 조용히 열어둘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다녀가지 않아도 괜찮고 다시 마주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한때 내 안에 머물던 그 존재가 내 삶에 작은 결을 남기고 간 것을 나는 부드럽게 인정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지금의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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