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에 대하여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감정의 원형

by 마르치아


우리가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된 순간은 언제였을까. 아니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도 전에 어떤 눈빛 앞에서 이유 없이 목이 메이고 낯선 손길에 가슴이 서늘해졌던 순간들. 그것을 나는 '날것의 감정'이라 부르고 싶다.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 익히지 않은 감정 아직 언어가 되지 않은 떨림.


그 감정들은 우리를 부끄럽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답게 만든다. 사회는 우리가 그런 감정들을 숨기고 포장하고 익히길 바란다. 논리로 감정을 덮고 이성으로 격을 맞추고 시간을 들여 마침내 무해한 감정으로 가공해내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감정의 가장 처음은 어쩌면 아직 온기도 식지 않은 날것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불교에서 법은 진리이자 존재의 이치다.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고요한 울림. 수피즘에서는 라라는 개념이 있다. 존재의 자취가 지워지는 무의 자리에서 비로소 진실한 앎에 도달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그 자리를 은총이라 부른다. 그 어떤 자격도 없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근원적인 사랑. 그리고 감정은 그 은총의 가장 자명한 증거다.


감정은 논리보다 먼저 존재했다. 우리가 누군가를 보고 괜히 가슴이 먹먹해질 때 그건 단지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원형의 흔들림 존재의 기억이다. 그 사람과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손에 쥐고 온 무언가가 흔들릴 때의 반응이다. 나는 한 사람을 사랑한 적 있다. 그 사랑은 완벽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끄럽고 아프고 끝내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 말끝이 떨리고 두 눈을 피하고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리는 시간들. 그 안에 있었던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진실했던 감정이었다.


사람들은 감정을 익히라고 한다. 적당히 말하고 적당히 울고 적당히 사랑하라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이름 앞에서 숨이 막히고 그의 눈빛을 기억할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 그것은 익히지 않은 감정이다. 아직도 뜨겁고 살아 있고 날이 서 있다. 그런 감정은 다듬을 수 없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껴안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진짜 얼굴이라는 것을 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처음의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으로 세상에 왔다. 말보다 울음이 먼저였고 판단보다 체온이 먼저였으며 설명보다 감정이 먼저였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기억되는 것도 결국은 그런 감정들일 것이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용서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감정의 원형은 날것이다. 그 어떤 세공도 닿지 않은 그 자리에서 우리는 신의 숨결을 느낀다. 그리고 그 숨결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유일한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날것을 애써 지우지 않으려 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눈빛 식지 않은 떨림 끝내 말하지 못한 말들. 그 모든 것이 나라는 사람을 가장 정확히 말해주는 언어다. 그 언어는 어눌하고 때로는 지나치며 흔히는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한다. 신이 우리를 보낼 때 아마 그 감정을 꼭 쥐여주셨을 것이다. 익히지 말라고 숨기지 말라고 살아 있으라고. 우리의 날것은 그래서 신성에 가장 가까운 언어일지 모른다 언젠가 다시 꺼내어도 여전히 살아 있을 그 말 없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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