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luck

by 여운

스며듦.

단지 스며든 이야기.


두 귀를 윙윙거리던 연말. 마지막의 마지막 31일. 정신없는 삶을 몰아 사는 듯한 산만한 테이블 속 작은 스파크. 그 속의 작은 정적. 모두의 묵인 가운데 내 커다란 빈 공간 속에서부터 콩 하고 울리는 메아리.


이제 나를 집어삼킨다. 끝없는 죄책감을 가로질러 옅은 일탈의 희열과 어느 날의 맛보았던 짜릿한 쾌락을 느낀다. 건전지 뒷부분을 핥은 것처럼. 구태여 하지 않을 희괴망측한 행동.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범죄. 그러나 이제야 설명되기 시작하는 정당함.


미친 소리. 정신 나간 소리를 해대는 노망 난 젊은이. 이성적으로 판단해. 감당 못할 죽을죄는 피하는 게 상책이야. 그러나 끝내 나를 길 잡는 건 오로지 본능. 단 한 번만, 딱 한 시간만 우리를 엮어 하나의 실로 묶일 수 있다면. 미련 없이 끝내리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단 한 번만..


무엇을 바라기에 이토록 무모해지는가. 젊은 녘. 단두대로, 화형장으로 올라서던 죄 많은 마녀들의 최후를 잊었는가. 모든 것이 자비로운 시대에서 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옛날의 역사를 다시 쓰는가. 옳지 못한 죄로 혹은 나 혼자만이 떳떳하다는 이유만으로 죽으려 하고 매장당하는가...


곁에 잠든 이를 생각하자. 이런 시간조차 함께 들날숨을 함께하는 이를. 기대어 쓰러진 송아지와 다를 바 없는 이를. 나의 정체를 모른 채 잠이 든 다프네에게.


그러나 에로스여. 어찌하여 내게 금화살을 쏘았는가. 엇갈린 살촉에 나는 누구를 저주해야 하는가. 닿을 수 없는 나의 처치가 정오는 다행이며 자정은 불행이여라. 잠 못 드는 이 시간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은 나를 묻고 묻고 묻고... 아니라, 아니다, 아닌데... 그러나, 그럼에도..


단지 스며든 이야기. 소름 끼치게 기분 나쁠 황홀한 이야기. 잔혹동화의 한 장면.

견디는 것은 언제나 나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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