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결혼식 하게? 할 거면 빨리
코로나가 창궐한 지도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사람들의 마스크를 벗은 모습이 더 어색하고, 외식보다는 배달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세상이 되었다. 국내에서 코로나는 2020년 1월 처음 확인되었고, 2월 중순 대구 지역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는 정확히 2020년 2월 21일, 해운대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다.
이렇게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다음 날이 내 인생에 한 번 밖에 없을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큼 운 좋은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과정만큼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코로나 초기이다 보니 사람들의 공포심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고, 무엇보다 모두가 처음 겪는 현실에 허둥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결혼을 미뤄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식을 올렸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결혼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결혼한다!
내 인생에는 극적인 장면이 꽤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비극이었다. 5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를 잃었고, 학창 시절에는 가난이란 놈이 쉴 새 없이 괴롭혔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굶지 않을 정도가 되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그 덕분(?)에 15년 간 소식도 모르고 지내던 어머니와 재회하게 되었다. 그렇게 평생을 한부모 가정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로망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또 예쁜 아이를 낳아 사랑을 듬뿍 주며 키우고 싶었다.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 맞이할 내 마지막 날, 사랑하는 이들의 품에서 행복하게 눈감고 싶었다. 빨리 결혼이 하고 싶었다.
이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7년이라는 연애 끝에 결혼을 약속했다. 예식장을 예약하고, 신혼여행지도 결정했다. 그 뒤부터는 정해진 일정을 순조롭게 소화하며, 애타게 결혼식을 기다리게 되었다.
D-50일.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
그렇게 천천히 결혼을 준비하던 어느 날, 세상이 떠들썩한 이슈가 발생했다.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뉴스에서는 거리에 사람 하나 없는 봉쇄된 중국 어느 지역의 영상이 보도되었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픽픽 쓰러진다', '거리에 시체가 즐비하다'는 식의 괴담이 돌기 시작했다.
D-3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산발적 확진자 발생"
우려하던 국내 첫 확진자가 나왔다. 이후 드문드문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뉴스속보가 보도되었다. 하지만 그 숫자는 한 자리에 불과했고, 잘 통제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안심했다. 딱 지금처럼만 유지되기를 바랐다.
D-4일. "대구 지역 첫 집단감염 발생. 지역 감염 확산"
대구 지역에서 집단감염이 확인되었다고 했다. 한 종교를 중심으로 확진자 수가 수십 명 단위로 늘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확산이 멈추길 바랐다. 이기적일지라도 부산만큼은 안전지대이길 바랐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주일만 안전지대이길 바랐다.
D-1일. "부산지역 첫 번째 확진자 발생"
결혼식 전 날 오후.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뉴스가 나온 직후,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애기가 있어서...', '집에 환자가 있어서...', '임신해서...' 등등의 이유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계좌번호를 달라는 연락들이었다.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많은 분들께 축하받는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속이 상했다. '왜 하필이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억울하기도 했다.
D-Day.
결혼식장이 난리가 났다. 같은 예식장에서 우리보다 한 시간 앞서 식을 올릴 예정이던 어떤 신부가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을 망쳤다며 예식장이 떠나가라 울고 있었다. 같은 처지였던 우리 역시 함께 울고 싶었다. 세상을 원망했다. 굳이 결혼식까지 이렇게 극적으로 망쳐야 하는 것인지, 왜 내 인생은 이리도 꼬이는 것인지 신세를 한탄했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해 결혼을 축하해주셨다. 와서 '결혼 축하한다'라고 한마디를 전해주실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때 찾아오신 분들 모두,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축하를 해주러 오신 영웅이자 은인들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다.
당시에는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 생각했다. 멋진 결혼식과 행복한 미래를 그릴 시간에 뉴스를 보며 확진자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숨죽이며 지켜봐야 했고, 신혼여행지의 맛집 검색 대신 신혼여행을 갈 수는 있을지, 공항에서 발이 묶이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했다. 혹시나 결혼 전에 코로나에 걸릴까 봐 며칠 동안은 아예 외출도 하지 못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시기였다.
그럼에도 결혼식을 준비하는 커플이 있다면, 되도록 빨리 하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 완벽한 타이밍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 예식을 준비하던 친구 한 명은 결혼식을 6개월 뒤로 미뤘다가 코로나가 재유행하며 다시 한번 식을 미뤄야 했다. 결국 예정보다 1년 이상 지난 후에야 제한된 인원만 겨우 초대해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이유는 지나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결혼식'자체가 과연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예식장, 신혼여행, 축의금 모두 다 중요한 요소겠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함께 한다는 본질에 집중했다면 그렇게 스트레스받지는 않았을 텐데. 여행이야 뭐 나중에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것이고, 요즘은 리마인드 웨딩 촬영이다 뭐다 해서 드레스도 쉽게 입을 수 있는데 말이다.
우리 부부도 비록 결혼식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때 식을 강행한 덕분에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낼 수 있었다. 또 거리두기 덕분(?)에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대화가 늘었고, 이전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도 훨씬 커졌다. 지금은 코로나가 끝나면 떠날 해외여행과 리마인드 웨딩촬영도 계획 중이다. 나중에 코로나가 종식되면 코로나 시대에 올린 결혼식도, 거리두기 기간 동안 일어났던 변화들도 좋은 추억이 되어 함께 꺼내어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