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쩔 수 없어

선택하지 않는 선택에 대하여

by The 늦기 전에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말은

“지금은 어쩔 수 없어”였다.


이 말은 늘 그럴듯했다.

현실을 고려한 판단처럼 보였고,

책임감 있는 선택처럼 들렸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지금은 너무 바빠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서.


그렇게 말하며

나는 많은 것들을 미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반복해 왔다.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마음 한쪽이 늘 불편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데,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닌 것 같은 느낌.

진짜 해야 할 말은 애써 삼킨 채

스스로를 속이고 돌아서는 기분.


어느 날 문득 이 질문이 떠올랐다.


지금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선택을 미룰 때

항상 미래를 근거로 삼는다.


조금만 더 지나면,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이 시기만 버티면.


그때가 오면

지금보다 더 잘 선택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조금 뒤’는

늘 지금보다 더 바빠져 있다.


책임은 늘어나고,

잃을 건 많아지고,

되돌리기 어려운 것들이 쌓인다.


그래서 더 말하기 어려워지고,

그래서 더 선택하기 힘들어진다.


그렇게

“지금은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은

점점 단단해진다.


언젠가부터는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말이 된다.


어쩔 수 없다는 말 뒤에는

대개 이런 마음이 숨어 있다.


틀릴까 봐 두려운 마음,

남들 눈에서 벗어날까 봐 무서운 마음,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의미 없어질까 봐 겁나는 마음.


그래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덮어둔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한 삶인지,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지금의 선택이 나중에 나를 살릴지,

아니면 더 옥죄일지.


그 질문을 미루는 대가로

우리는 비교적 안정적인 하루를 얻는다.


하지만 대신

설명하기 어려운 찜찜함을 함께 안고 산다.


크게 불행하지는 않지만

딱히 만족스럽지도 않은 상태.

잘못된 것 같지는 않은데

분명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


어쩌면

후회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이렇게 쌓여가는 건지도 모른다.


선택하지 않았던 순간들,

넘겼던 마음들,

“지금은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던 기억들.


나는 아직도

모든 선택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는 못하다.


여전히 망설이고,

여전히 겁나고,

여전히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에 올릴 때가 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 말을 하기 전에

한 번쯤은 멈춰 서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

지금의 삶을 건드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까.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정답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질문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의 선택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려보내는 삶은

점점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현실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에서 도망치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기억하려 한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

가장 쉽게 나오는 순간이

어쩌면

가장 조심해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 The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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