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 믿어온 인생 설계에 대하여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삶은 정말
내가 선택한 삶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그려둔 설계도를
내 것이라고 착각한 채
여기까지 와버린 건 아닐까.
어릴 때부터
비슷한 말을 들으며 자랐다.
공부 잘해서
대학 잘 가고,
직장 잘 구해서
정년까지 다니면,
그게 잘 사는 인생이라고.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단 한 번도 그 말이 틀렸다고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그렇게 사는 게
맞는 줄 알았다.
그래서 직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이곳에서
앞으로 40년을 더 보내는
내 모습을 상상해 봤다.
큰 사고 없이,
별 탈 없이
평범하게는 살 수 있겠지.
하지만
60대에 퇴직하고,
70대에 다시 생계를 걱정하고,
그 이후의 삶까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때 처음으로
이 질문이 떠올랐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한 미래일까.
주변을 보면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참고’ 살고 있었다.
누군가는 장밋빛 미래를 기약하며
지금을 버티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오직 자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었다.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왜 우리는 늘
행복을 나중으로 미뤄두는 걸까.
그때 깨달았다.
이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정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믿어왔던 기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걸.
만약 이 길이
정답이 아니라면 어떡하지.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이
어쩌면
낭떠러지로 이어져 있다면 어떡하지.
그래서 우리는
이 질문을 피한다.
남들 시선이 두렵고,
남들 기준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의심은 덮어두고
하루하루를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간다.
하지만
이 질문을 계속 미뤄두면
어느 순간부터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만약 누군가가
이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한 번쯤은
모든 걸 내려놓고
생각해 보라고.
직업도,
타이틀도,
남들 기대도 전부 빼고.
그때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누구와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지금의 솔직한 답일 수 있다고.
나는 아직도
이 질문의 답을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 질문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삶은
결코
내 삶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이 질문을 기록한다.
지금의 삶이 정말 정답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설계도를
대신 살아가고 있는 건지.
더 늦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
— The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