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가장 오래 남았다.
우리는 보통
잘못 선택해서 후회한다고 말한다.
그 길로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지만 정말 오래 남는 후회는
대개 다른 곳에서 시작된다.
선택하지 않았던 순간들,
말하지 않았던 마음,
잡지 않았던 손,
미뤄두었던 결정들.
그때는
가만히 있는 게 더 안전해 보였다.
괜히 말했다가 어색해질까 봐,
괜히 나섰다가 틀릴까 봐,
괜히 움직였다가
지금의 균형이 깨질까 봐.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그 순간은 편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문제는 시간이 지난 뒤다.
상황이 끝나고,
관계가 멀어지고,
되돌릴 수 없게 된 다음에서야
비로소 그 선택이 떠오른다.
그때 내가 하지 않았던 선택이
사실은
미루는 쪽을 택한 또 하나의 선택이었다는 걸.
후회가 무서운 이유는
과거를 바꿀 수 없어서가 아니다.
그때의 내가 이미
생겨날 후회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요한 선택 앞에서
우리는 몰랐던 게 아니다.
느꼈고,
알았고,
찜찜했고,
그래서 미뤘다.
그래서 나는
요즘 후회를 이렇게 정의한다.
후회는
틀린 선택의 대가가 아니라,
선택을 미뤘던 시간의 총합이라고.
지금도 계속 미루고 있는 말 하나,
결정하지 않은 관계 하나,
언젠가 해야지 하고 덮어둔 선택 하나.
그 모든 것들이 후회의 씨앗이 된다.
어떤 것들은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지금도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
선택 앞에 서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완벽한 선택은 없다.
틀릴 수도 있다.
후회가 남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는 후회보다는
훨씬 견딜 만하다.
그래서 나는
이 기준을 하나 세웠다.
지금 이 선택을
미뤄서 편해질 것인지,
지금 이 선택을 해서
조금 불편해질 것인지,
어느 쪽의 후회를 감당할 수 있을지.
그 질문만은 피하지 않기로 했다.
후회는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후회를 남길지는
지금도 선택할 수 있다.
ㅡ The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