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집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반지하에서 시작된 기억

by The 늦기 전에

내가 살던 집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집 안이 아니라 골목 한쪽에 여러 집이 함께 쓰는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밤에 화장실을 가려면 랜턴을 들고나가야 했다. 겨울에는 특히 가기가 싫었다. 그 추운 새벽에 찬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화장실을 가는 일조차 곤욕이었다.


또 반지하라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집 앞 골목에 물이 차올랐다. 장화 없이 밖에 나가면 발목까지 잠겼다. 어른들은 빗자루나 양동이로 물을 퍼냈다.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려고 골목에서 한참을 물을 밀어냈다.


집에는 냉난방도 거의 되지 않았다. LPG 가스와 기름보일러를 쓰던 집이었는데, 어려서부터 기름값이 비싸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그래서 겨울이 되어도 보일러를 켤 수 없었고, 전기장판 한 장에 의지해 겨울을 났다. 간혹 정말 너무 추운 날에만 보일러에 남아있는 기름을 확인하고 잠깐 틀어 추위를 피했다. 또 한 겨울에 씻을 때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 씻었다. 욕실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작은 공간에서 그 물을 섞어가며 씻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그게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변에도 비슷하게 사는 집들이 많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냥 그게 우리의 생활이었다. 불편하긴 했어도 늘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기준 자체가 그곳에 맞춰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살던 집이 조금씩 바뀌었다. 반지하에서 2층으로, 또 다른 집으로,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지금은 20층이 넘는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높은 층에 올라와 창밖을 내려다봤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창밖에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예전에는 골목의 가로등 하나만 켜져 있어도 밝다고 느꼈는데, 그 풍경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늘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나 역시 가끔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쓸 돈은 항상 부족하고, 사는 게 참 빡빡하다고 느낄 때도 많았다. SNS 속 다른 이들의 화려한 삶과 비교하며 내 인생에는 왜 이런 시련만 가득한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가끔 예전 집을 떠올리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진다. 지금 집에는 화장실이 집 안에 있다. 무려 두 개나!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나 따뜻한 물이 언제든 나온다. 겨울에 보일러를 켜는 걸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한 겨울에도 집안에서 민소매 차림으로 다닐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 내가 바라던 삶의 모습 중 많은 것들이 이미 지금의 삶 안에 있다.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집을 보여준다면 아마 꽤 놀랄 것 같다. 정말 출세했다고 펄쩍 뛰며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는 가난이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가끔은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삶은 조금씩 바뀌었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이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도, 이미 예전의 나에게는 꽤 괜찮은 삶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지금 조금 힘들어도 지나고 보면 미래의 나는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 The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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