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늦기 전에 Aug 16. 2021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

예방약도 치료제도 없는

"있잖아,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 봐. 그럼 엄청 용감해질 수 있어"


영화 <올드보이>에 나오는 주옥같은 대사다. 살아보니 이 말은 언제나 정답이었다. '높은 곳'이 무서운 것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하기 때문이고, '질병'이 무서운 건 그 질병을 걸렸을 때의 통증이나 후유증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병은 '건강염려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등 가운데 부위에서 쪼그라드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마치 찌르는 것 같기도 했고, 근육에 쥐가 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 같기도 했다. 보통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하게도 근육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심한 '건강염려증'을 앓고 있다. 그래서 곧바로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한 키워드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췌장암"


  췌장암의 증상 중에 등 부근의 통증이 있었다. 걱정이 밀려왔다. 등 통증 말고도 여러 증상들이 설명되어 있었고,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지만 이미 췌장암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이런 증상을 검색할 때 항상 급격한 체중감소에서 탈락이다. 몇 년째 한 번도 살이 빠진 적이 없다.) 


  어느새 등 통증에 대해 검색하려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췌장암의 원인, 증상 등을 검색하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니까 위험한 것은 아닐까?', '최근에 등이 좀 자주 아팠던 것 같기도 하네...' 등등 걱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불현듯 죽음의 두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까지 건강을 걱정하게 된 거지?

 


  생각을 해보니 군 복무 시절 선임병사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6개월 선임이던 A상병은 나와 같이 군대에 조금 늦게 온 케이스로 23살 동갑내기였다. 흔히 말하는 '에이스'로 불릴 만큼 군생활을 잘했으며, 후임들에게는 매우 엄격한 모습을 보였다.


  동갑이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동생들 밑에서도 열심히 하려는 내 모습을 좋게 봐주었는지 몰라도 우리는 꽤 가깝게 지냈다. 그는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고, 신앙심이 투철한 개신교 신자였다. 그랬던 그의 건강이 조금씩 악화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헛구역질을 했고, 얼굴은 흙빛이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복통을 호소했다. 내 기억에 그는 결코 꾀병을 부릴 사람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몸이 안 좋아 보였다. 결국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대장암'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충격이었다. 이후 A상병은 조기 전역을 해야 했고, 몇 년이 지난 후 군대 동기를 통해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십 대에 암이라니... 나도 죽을 수도 있구나... 빨리 검사해봐야겠다... 죽는 것이 두려웠다.


  그때부터 내게는 '건강염려증'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 병은 고통도 없고, 후유증도 없다. 하지만 그 '무서움'의 크기만큼은 그 어떤 질병보다도 크다. 이번에 췌장암을 걱정하면서 느낀 감정도 '지금 죽으면 어떡하지?'까지 발전되었다.


  물론 그 뒤로 증상은 없다. 다른 이유로 방문한 병원에서 물어보니, 등에 통증이 생길 만큼 말기 췌장암이 진행되려면 이미 황달이나 복통을 수반한 다른 증상들이 보였어야 한다며 단순 근육통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그러고 보니 최근 안 하던 운동을 시작하긴 했다.)


  그렇게 죽음에 관한 책을 읽고 죽음을 공부하고, 또 사람들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자'는 목표를 가졌음에도 죽는 것이 너무 두렵다. 늘 죽음에 대해 준비하고 살자고 주장하면서도 막상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눈에 눈물부터 차오른다. 부디 이제라도, 내일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일단 오늘부터 최선을 다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