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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늦기 전에 Sep 18. 2021

<펜트하우스 시즌3>, 너무 실망인데?

죽음이 장난이야?

  또 한 편의 막장드라마가 끝났다. 아내에게 '이제 막장 드라마를 보지 말자'는 설득에 실패한 나는 펜트하우스 시즌3을 끝까지 시청해야 했다. 물론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근데 가면 갈수록 막장 전개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특히 많은 장면을 오직 '말'로 설명하려는 부분에서는 억지스러움이 묻어났다. '난 이태리에 살고 있어.', '난 오스트리아에 있어' 등, 아마 회차가 조금 더 남아있었다면 극 중 주단태(엄기준 분)가 다시 살아 돌아와 세계 정복에 성공했다며 썰을 풀어놓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실망했던 건 이 드라마에서 죽음을 너무 희화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주연으로 떠오르기만 하면 다 죽여버린다. 죽음에 대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에서, 수없이 많은 이들이 시청한 드라마에서 이래도 되는 것인가?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수없이 많은 사람의 죽음이 묘사된다. 방법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바다에 빠져 죽고, 누군가는 총에 맞아 죽는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등장한다. 작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주인공을 죽인다. 그리고 감독과 배우들은 그것을 최대한 잔인하게, 극적으로 표현해내는데 여념이 없다. 


  그리고 죽음을 무슨 도구처럼 활용한다. 복수를 위한 도구이자, 자신의 죗값을 치를 수 있는 사죄의 도구로 죽음을 이용한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심수련(이지아 분)은 천서진(김소연 분)에게 살인죄를 씌우기 위해, 또 자신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던지며 이런 대사를 남긴다. 


"(로건 리에게)하지만 당신과 꿈을 꾸기에는 난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잃었어요.(... 중략...) 그들에게 용서를 빌러 갑니다. 우리의 죽음이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 때문에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용서를 빌기 위함'이라는 거창한 포장을 했지만, 결국 그 선택은 매우 이기적인 선택일 뿐이다. 아무리 드라마 속 가상의 인물이라지만, 남겨질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는 일이다. 실제로 죽음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었다.


  요양병원에 가면 실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다양한 환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육안으로 임종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는 환자도 있다. 그런 분들 주변에는 수많은 장비가 함께한다. 음식은 코에 연결된 관으로 주입되고, 가래는 석션으로 임의로 빨아낸다. 더 심해지면 산소호흡기가 강제로 호흡을 돕는다.


  내 할머니도 마지막에는 콧줄에 석션까지 해야만 했다. 힘겹게 숨을 들이쉬는 것을 볼 때면 '차라리 더 이상 고통받지 말고 떠나시는 편이 더 행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참을 침울해야만 했다. 하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곧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고 있더라도, 그래도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최근 아내의 외할아버지는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하루하루 고통이 더해져 가는 듯했다. 그런데도 애써 아픈 모습을 감추며 손주와 손주 사위를 맞아주시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병원에서는 이미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가족들도 다 포기하게 될 줄만 알았다. 그런데 외할머니께서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다.


"이렇게 몇 달이라도 더 살다 가면 좋겠구먼..."


  이처럼 관계라는 것은, 더 정확히는 가족이라는 것은 지우개로 지우듯이, 삭제 버튼으로 삭제를 하듯이 그렇게 쉽게 지워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임종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게 바로 '죽음'이라는 존재다. 남겨질 가족은 그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한다. 부디 그런 죽음의 가치를 하찮게 표현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죽음은 누구나 겪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죗값을 대신할 수 있는 수단도 아니고, 힘든 현실에서 도망치게 해주는 도피처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 암에 걸린 사람이, 혹은 삶에 너무 지쳐있는 사람이 이런 드라마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죽는 게 참 쉽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까? 


  물론 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보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시청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막장드라마의 시청률이 얼마나 잘 나오는지는 충분히 알겠다. 하지만 대중매체에서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조금 더 신중히 표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쉽게 죽음을 선택하는 TV 속 세상을 바라보며, 삶의 의지가 꺾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도 걱정된다. 차라리 이 드라마를 보고, 내 가족의 죽음을 생각하며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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