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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는 책책책 Aug 23. 2024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다가

나는 선우 같은 아들이 좋다

    

넷플릭스에서 아이들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고르다가 선택한 <응답하라 1988>. 고등학교 형 누나들 이야기도 나오고, 또 대한민국의 80년대 모습을 틈틈이 보여주니 아이들이 흥미로워할 거 같았다. 하지만 초반에만 반짝 집중했었던 거 같다. 그리고 1년 후 초4, 초2가 된 내 아이들은 이 드라마를 다시 보길 원했다.      

1화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내 아이들은 덕선이, 정환이, 택이 등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에 흥미로워했다, 나 역시 이 드라마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정환이와 택이 중 누가 덕선이와 결혼했을까에 궁금증을 가졌던 거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정환, 택이, 선우를 보며 내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아들에게 말해버렸다. 

“엄마는 선우 같은 아들이 좋아.”      


엄마에게 다정다감한 선우라는 캐릭터가 다시 보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성동일&이일화, 라미란&김성균, 최무성, 김선영이 자식을 키우는 방식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들 자녀 모두 공부도 열심히 했고, 잘했고,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했다, 이것은 다 부모들의 많은 사랑과 관심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울컥한 부분이 있었는데 성동일이 우는 덕선을 달래주면서 했던 대사다.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자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디... 그니까 우리 딸이 조금 봐줘.”      


그러고 보면 내 부모님도 엄마 아빠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보다도 훨씬 어렸을 때 부모가 되었을 텐데. 난 그 당시 어른이면 엄청 많은 것을 알 것이고, 덜 아프고, 참을성 있고, 힘도 셀 것이라고 여겼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나는 나이만 먹었지 지금도 서툰 것, 모르는 것 투성이고 어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은 것인지 실감하는 중이다.      


# 보라가 고시공부를 하겠다고 집을 떠날 때 아빠 성동일이 골목 한편에서 약봉지를 들고 기다렸다가 보라에게 주었던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약마다 언제 먹어야 하는지 글씨로 적어서 건넸던 부분이었는데 부모는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부모의 자식 걱정은 자녀가 몇 살이 되어서야 끝나는 것일까?      


덕선의 학교에 대학진학 상담을 하러 온 이일화. 담임 선생님과 상담 후 덕선이 갈 수 있는 대학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점쟁이 말을 믿고 덕선이를 수연이라고 부를 정도로 누구보다 덕선이 대학에 들어가길 바랬지만 선생님과의 상담을 마치고 나서는 덕선의 엄마는  덕선을 보며 수연이라는 이름 대신  "덕선아 들어가"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며 뒤돌아서 간다.      


“엄마 나 포기했어?  나 덕선이 아니고 수연이야.... 

엄마... 미안해.”               


덕선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이 시점으로 덕선은 변화한다. 엄마가 자신의 이름을 수연이라고 부르면서 기대를 해주었던 게 덕선 입장에서는 좋았던 거 같다. 너는 왜 공부를 못하냐고 화를 내고 윽박질렀다면 덕선이 이렇게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었을까?      

     

# 선우는 엄마가 목욕탕에서 일하는 것을 알게 되고, 엄마가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게 싫다고 보라에게 이야기한다. 그러자 보라가 선우에게 하는 말이다. 

     

“됐고. 가서 엄마 어깨나 주물러드려. 넌 엄마 고생하는 거 싫지? 그게 너 맘도 편하고.     

야. 엄마는 너 나이키 운동화 하나 못 사주는 게 싫은 거야. 넌 너 생각만 하냐. 엄마 생각은 안 해? 너 맘만 편하면 다냐고. 이 철딱서니 없는 놈아."          

보라가 선우에게 이런 투정 부릴 때 일하고 오신 너희 어머니 어깨나 주물러드리라는 그 말이 참 기억에 남았다.   

        

#  성동일이 덕선에게 묻는다.      

“우리 덕선이는 꿈이 뭐데? 어떤 사람이 제일로 되고 잡허? 아빠가 보라 언니보다도 더 몰래 팍팍 미뤄줄라니까 얘기해봐.”     


“없어..

 난 꿈이 없어 아빠..  

 나 한심하지.. 

 나 진짜 멍천한가봐...”     


 “아잇 멍처하긴 뭤이 멍청하데  그 꿈은 시방 가지면 되지”     

     

  “정말?”     

     

  “아 정말이지 아버지도 니 나이 때 아무 생각 없이 살았어. 덕선아. 다 그래. 괜찮아 덕선아. 너만 그런 거 아닌께 하나도 걱정하지마.”     

     

내 아이들이 고3까지 꿈을 찾지 못해 이렇게 힘들어한다면 나도 덕선이 아빠처럼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넌 왜 지금까지도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했냐고 나무라고 있지는 않을까!?

나도 덕선이 아빠처럼 아이가 불안해하고 힘들어한다면 내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엄마도 그랬다고. 다 그런 거라고. 

     

응답하라 1998을 보면 참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었다. 

훗.. 어쩜 우리 엄마의 예전 머리와 이렇게 똑같은지.. 옷은 또 어쩜 옛날 옷을 이렇게 구했는지. 소품은 또 어떻고. 그리고 주인공이 고등학생이라 유난히 도시락 먹는 장면이 많았던 거 같다. 나 역시 도시락 세대로 항상 이른 아침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셨는데 엄마가 되어보니 그게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드라마가 방영되었던 9년 전만 해도 명예퇴직이나 여성 갱년기는 먼 훗날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배우 성동일이 회사 때문에 힘들어하고 그런 힘든 남편에게 아이들 시집 장가보낼 때까지는 그만두면 안 된다던 이일화의 모습. 결국 성동일은 퇴직금을 두 배로 받는 대신 원치 않는 명예퇴직을 하게 된다. 


인생에 있어 늘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찾아올 수 있고, 또 이 위기를 가족들이 함께 극복하면서 더욱더 사랑은 커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보라, 덕선, 노을은 아빠만을 위한 퇴임식을 준비하며 기념패를 선물하는데 울컥했다.

      

덕선이처럼 엄마의 갱년기를 살뜰하게 챙겨주지 못한 부분이 엄마에게 참 미안하기도 했고.  문득 내 성격이 덕선보다는 보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덕선을 부러워하지 않을 거 같은 보라가(매번 공부 못한다고 덕선을 구박했다) 감정 표현도 잘하고 밝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런 덕선을 부러워하는 부분이 후반부로 갈수록 종종 나오는데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또한 동성동본 이야기가 나와서 흥미로웠다. 선우 엄마와 덕선 엄마가 자녀들이 사귀는 거를 탐탁치 않아 해서 무슨 이유가 있나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동성동본'이었다. 

동성동본은 성씨와 본관까지 모두 같을 때를 말한다. 이를 어기고 결혼하게 되면 혼인신고 자체가 되지 않아 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의 반대는 물론이고 자녀들이 태어다면 의료보험 혜택은 물론 학교 진학도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라와 선우가 결혼하던 1996년에 특례법을 시행해 이 둘은 결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2005년이 되어서야 결국 동성동본 폐지가 되었다.     

     

어른 덕선과 택이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덕선이 묻는다.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냐고 . 

택이는 

"난 지금이 더 좋아. 그래도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건 하나 있다. 애들이랑 밤새 내 방에서 놀던 거."       

덕선은 말한다.      


"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 시절로 돌아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젊고 태산 같았던 부모님. 젊고 태산 같았던 부모님이 보고 싶어.."          


나도 그때 그 시절 내 부모님을 떠올려 보았다. 보고 싶다. 젊고 태산 같았던 나의 부모님..      


마지막 덕선의 나레이션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눈물겹도록 푸르른 시절, 나에게도 그런 청춘이 있었다. 쌍팔년도 우리의 쌍문동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 시절이 그리운건 그 골목이 그리운건 단지 지금보다 젊은 내가 보고싶어서가 아니다. 그곳에 아빠의 청춘이, 엄마의 청춘이, 친구들의 청춘이, 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의 청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한데 모아놓을 수 없는 그 젊은 풍경들에 마지막 인사조차 못한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8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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