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보다 더 진짜 같은 말, “보고싶다”

by 영일이

-낯선 무게를 가진 말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말했다.

나는 ‘보고싶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진짜 같다.


그 대사는 며칠 동안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친구들이 내게 “보고싶다”고 말해줄 때 느껴지는 따뜻함, 그와 동시에 어깨에 얹히는 묘한 책임감.

나는 이 낯선 감정의 층위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보고싶다가 더 진짜야?가 궁금했다.

-언어학적 기원, 결핍과 욕망의 진술


영어 miss는 고대 영어 missan에서 비롯되어 본래 '놓치다, 잃다, 맞추지 못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오늘날 I miss you(보고싶어)는 이 결핍의 의미가 확장되어 파생된 표현이다. 즉 '너를 놓쳤기에, 네가 곁에 없어 허전하다'라는 마음이다.【Oxford English Dictionary, miss, OE missan】

반면 한국어 “보고싶다”는 “보다 + 싶다”의 결합으로 “재회를 욕망한다”는 의미이자 충동을 담는다.

같은 그리움이라도 영어는 결핍의 진술, 한국어는 행위의 욕망에 가깝다. (언어와 문화가 감정의 결을 다르게 조직한다는 사실은 늘 신기하다.)

-신경·심리학적 뿌리, 몸이 먼저 말하는 그리움

사실 보고싶다는 건 머리로 계산해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애착 대상이 멀어지면 우리 뇌는 곧바로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해마와 편도체는 기억을 재생하고, 도파민은 재회의 기대를 일으키며, 옥시토신은 관계를 갈망하게 만든다. 【Levine, 2008, Attachment Theory and Close Relationships】

결국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불현듯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건 결국 생각의 산물이 아니라 몸의 반응이다.

“보고싶다”라는 말은 그 반응 이후 붙여진 이름표에 불과하다.


나는 ‘어떤 기억은 희미해져도 그때의 감각과 감정은 여전히 남아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정신분석학적 시각 — 타인의 시선 속에 나

정신분석은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길 한다.
우리가 보고싶은 건 단순히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선 속에 비친 “나”일 수 있다고, 말이다.

레비나스는 타인을 “나를 비추는 얼굴”이라 했고,
사르트르는 “우리가 갈망하는 건 사실 타인의 시선 속의 나”라고 했다. Sartre, 1943, L'Être et le néant】

그들에 따르면 “보고싶다”는 말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닌 타인을 통해 확인되는 나의 존재를 붙잡고자 하는 욕망에 가깝다.


(내가 없어서 생겨난 빈자리를 내가 채워야 한다는 무게를 느껴본 적 있나요?)


-역사적 맥락 — 편지에서 알림창까지

과거로 돌아가보자.


조선시대의 편지에서도 “보고져 하노라”란 문장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고 싶고 그리운 건 인간의 본능이다. 다만 달라진 건 그것을 표현하는 조건과 방식이다.

조선시대의 '보고져 하노라'는 왕래가 막힌 시대, 재회의 기도이자 생존의 불안을 담은 무거운 문장이었다.

반면 오늘날의 '보고싶다'는 단 한 줄의 메시지로 즉각 전송되는 다소 일상적이고 즉흥적인 고백이 되었다.


이처럼 같은 말이라도 시대마다 달리 울린다는 걸 알 때, 우리는 오늘 우리의 '보고싶다'가 가진 무게를 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고백이 남긴 순간들


나는 ‘보고싶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진짜 같다.


그래 진짜라는 게 다 뭘까.

사랑보다 더 진짜 같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의 무게는 사실 진실 여부가 아니라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너 없이는 내 안 어떤 부분이 비어 있고, 그 결핍이 지금 나를 흔들고 있다는 고백. 그래서 나는 네가 보고싶다는 몸부림.


이기적이고 투박해서 '날 것'처럼 느껴지는 말.

사실 다 같은 말이다. 사랑한다. 보고싶다.

결국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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