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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트 May 09. 2022

엄마의 집

추억의 그 맛

부산역에서 집으로 이동하는 택시의 창문 너머 해묵은 먼지를 털어내듯이 세월의 변화에 맞춰 많이 변해버린 풍경이 엄마의 체취와 뒤엉켜 낯익기도 낯설기도 하였다. 민락동 그곳엔 가파르지 않은 경사길 끝자락에 자리 잡은 이층 집이 리모델링을 끝내고 깔끔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엄마의 집이었던 그곳에 넷째와 막내가 아래위로 같이 살고 있다. 집 뒤 엄마의 텃밭이 있던 자리에는 이젠 아파트가 세워져 있다. 

어릴 적 나의 기억엔 바지런한 엄마는 텃밭을 매일 가꿨다. 얼갈이배추며 무와 상추도 직접 가꿔 밥상 위에 올렸고 덕분에 우리 가족은 매일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있었다. 

그날은 맑은 하늘 따사로운 봄 햇살이 정말 완벽한 주말 오후였다. 엄마의 오후는 배추 겉절이와 고등어 추어탕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요리를 대하는 엄마의 자세는 언제나 진지했으며 정갈하였고 무엇보다 정성이 가득했다. 희미한 기억 속에 붉은 고춧가루가 공중에 흩뿌려지듯 춤을 추며 배추 겉절이 위로 내려앉았다. 그것은 행복이었다. 어린 그땐 그걸 알지 못했다. 그런 싱싱한 채소와 고등어 추어탕이 밥상 위에 올라오는 날엔 언제나 그렇듯 그날도 평소엔 감정을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던 아버지는 연신 좋아하시며 두 그릇 정도를 비워 냈다. 엄마의 행복이 묻어있는 배추 겉절이와 고등어 추어탕은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우리 집의 별미 중의 별미였다.


"엄마, 가시가 아직 있나?" 

"그라모, 안 보이제, 눈에 안 보여도 아직 많지." 


엄마는 물을 적당히 붓은 은색 양은솥에 고등어를 푹 삶아 체를 받쳐 부드러운 살만 내렸다. 체에서 큰 뼈를 발라내고 잔가시를 하나하나 만져가며 골라내기를 반복하는 엄마 손은 매우 분주해 보였는데 체에서 내려진 생선 살을 다시 완전히 으깨어 놓는 엄마의 바쁜 손길을 따라 나의 시선도 연신 분주했다. 뽀얀 쌀뜨물이 준비되면 된장을 푼 뒤 잘 발라놓은 생선 살과 얼갈이배추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다 방아잎과 산초 가루, 양파, 숙주, 청양고추, 대파 그리고 데쳐서 준비한 고사리, 다진 마늘을 넣어 푹 끓여 정성을 더 해야 완성된다. 엄마는 모든 것에 매우 꼼꼼한 편이어서 뭐든 대충이 없었다. 

어린 난 방아잎의 향을 매우 좋아하였다. 하지만 향이 강한 산초 가루는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고등어 추어탕의 음식 궁합은 매우 조화롭기만 하였다. 혀끝에 감기는 그 맛은 신기하게 비린내가 나지 않아 비위가 약한 넷째도 잘 먹었고 이가 약했던 외할머니도 고등어 추어탕을 좋아하셨다. 그날의 따사로운 햇살만큼 여덟 식구에게 스며든 행복한 밥상이었다. 

엄마의 밥상은 언제나 소박하고 풋풋한 그리움이 먼저 떠오른다. 그 까닭은 아직은 젊음이란 단어가 걸맞을 즈음 병으로 삶을 마감하셨기 때문이다. 

매사에 엄마의 성격은 시원한 이목구비만큼이나 화끈했다. 무심한 듯 표현해도 정이 많고 마음이 넉넉해 음식을 이웃과 나눠 먹는 걸 매우 좋아하셨다. 이젠 나도 나이가 들어 어느덧 엄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엄마가 언제나 자주 해주시던 음식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진다. 

서울에 정착해 살며 그때의 향수로 마음 앓이를 할 때가 종종 있다. 엄마의 음식 레시피는 지금도 기억해둬 만들어 먹는 것들이 꽤 있는데 그중에서도 엄마의 고등어 추어탕은 일품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까다롭고 복잡하게 느껴져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얼마 전 장 보러 마트에 들렀다가 그날은 진열되어있는 고등어 통조림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게 되었다. 


 ‘오호! 이걸로 한 번 도전해 볼까?’ 


난 묘하게 끌린 고등어 통조림을 집어 들고 그동안 미뤄왔던 고등어 추어탕을 만들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기억 속에서만 맴도는 그 맛이 그리워 고등어 통조림으로 흉내를 내다니 마음이 묘하게 울렁거렸다. 엄마의 깊은 손맛과는 다른 가벼운 재료를 준비하고 고등어 추어탕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알배추, 숙주, 마늘, 파, 양파, 청양고추, 고등어 통조림을 가지고 그 맛을 내려니 매우 아쉬웠지만, 급한 마음에 만들어 보기로 했다. 쌀뜨물에 된장을 넣으며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그게 뭐꼬? 제대로 맛을 내야지.’


엄마의 정갈한 말투가 느껴진다. 짙은 그리움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타고 전해지는 것 같았다.

방아잎과 산초 가루가 빠진 고등어 추어탕은 엄마의 그 맛에는 가까이 갈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다진 마늘을 추가해가며 맛을 보니 나름의 가벼운 추어탕 맛을 내주었다. 결혼해 처음 해 본 고등어 추어탕은 남편과 딸내미도 입에 맞았는지 한 그릇씩을 뚝딱 먹어 치웠다. 방아잎과 산초는 향이 강하고 경상도에서 주로 사용하는 재료라 그런지 서울이 고향인 남편과 딸내미의 입맛에는 어떨지 궁금하다. 군에 가 있는 아들이 휴가를 나오면 그땐 방아잎도 준비하고 산초 가루도 넣어 제대로 된 엄마의 고등어 추어탕 맛을 내 볼 참이다. 

코끝에 감기는 엄마의 추어탕 그것은 사랑이었다. 내 아이들에게도 이런 진한 추억의 맛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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