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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트 May 25. 2022

나이라는 계단

또 한 번의 어른으로 거듭난다는 건

십 대에서는 몰랐던 ‘나이라는 계단’을 이십 대가 될 무렵 어렴풋이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에겐 그 당시 처음 느끼는 나이라는 무게의 감정이 왜 그렇게 벅차게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


“벌써 스무 살이 되다니, 다 컸네. 주민등록증이 나왔다는 건 그만큼 책임감도 따르는 거야.” 

‘흠, 이런 느낌은 무얼까?’


마음속으로 되뇌었던 날들.

영원히 피터 팬으로 남고 싶진 않았지만, 성큼 다가온 어른이란 단어가 낯설었다. 그건 성인으로 가는 복잡한 계단으로 갈아타고 한 칸씩 올라가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스무 살의 첫 느낌이었다. 

어른이 되면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건 다 할 것 같았던 이십 대의 첫 발걸음. 하지만 십 대와의 작별은 이상하리만치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싶은 만큼 나에게 묘한 두려운 감정을 일으켰다. 

스무 살이 되자 정말 그때 느꼈던 벅찬 감정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먹을 만큼 먹은 이 나이에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의 내 나이 오십 오세, 그렇게 멀리 보이던 나이에 닿고 보니 흰머리 희끗희끗했던 웃어른들이 생각난다. 이 나이도 먼 미래의 남 얘기라 생각한 적이 엊그제 같은데, 사십 대 끝자락일 때도 그랬으니. 

그런데 이젠 나 또한 흰 머리카락이 세월만큼 자리를 메워 지금 그 자리에 있다.


‘시간은 어쩜 이렇게 빠른지’

 

나이 든 어른들이 하던 말을 지금은 내가 내뱉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난 요즘 오십 대의 이 시간에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며 헛되이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몇 년 전 오십을 곧 앞둔 인생의 길목에서 나에게 변환점을 맞는 계기가 찾아왔었다.  

  

참 이상하지,     

철없던 시절엔 몰랐던 엄마라는 자리를 언제부턴가 나이라는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갈 때마다 난 그 나이만큼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삶의 깊이를 깨닫게 되었다. 그건 어쩜 또 한 번의 어른으로 거듭나는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딱 그만큼의 엄마를 이해했고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치르게 되는 일상의 생활에선 또 그만큼의 엄마를 이해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생인 두 아이를 키우며 나의 마음 한편엔 언제나 엄마의 잔재가 남아 항상 함께했다. 

그때마다 

‘이런 거였구나. 엄마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휴! 두 명인 데도 이런데, 엄마는 다섯 명이나 어떻게 감당했나 몰라?’ 

이런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것인가 하는 조금은 고리타분한 질문을 나에게 던지기도 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엄마로서 참아야 하는 인내와 희생이 뭔지를 아이를 키우며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위치는 감히 엄마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나에게도 젊은 시절 그림이 전부일 것 같았던 삶도 있었다. 그림에 파묻혀 살았던 이십 대의 나, 미래의 나도 그때의 모습 그대로 살 것 같았다. 그런 시간 속에서 한 남자를 만나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두 아이를 낳고 정성을 쏟으며 행복했다. 뜸하게 작업하며 언젠가는 열정을 담아낼 작업대를 거실 가장자리에 두고 위로하면서. 삶이 허락하는 날, 그날 하겠노라고 거창하게 생각하며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두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며 독립적인 성인으로 거듭나던 그해마다 난 경험하지 못한 낯선 느낌을 받게 되었다. 꼬맹이였던 아이들이 성인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 나이가 됐으니 당연하고 고마운 일이 아닌가? 두 아이는 개성 넘치고 자기 사고가 깊은 성인으로 거듭나 있었다. 


그런데 난 왜 그랬을까?

차가운 겨울의 한 복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 딱 그 기분으로 허전하고 공허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커고 나면 나의 생활을 하겠노라고 외치곤 한 날도 많았는데 정작 아이들이 커서 독립된 개체로 잘 자라줘 스스로의 길을 가는데 한편으론 씁쓸함이 함께했으니. 난 아이들 앞에서 어떤 표현도 할 수 없었던 사십 대의 그 시간을 지금 와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그것은 놓지 못하는 집착이었다.


그 또한 하나의 집착이었음을 인지하던 날,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 뒤돌아보게 되었다. 열정적이었던 젊은 시절의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두 아이의 성인식은 나에게도 그렇게 또 다른 의미였던 것 같다. 어른으로 가는 한 칸의 계단을 또 오른 느낌 말이다. 그토록 아이들에게 몰입해 살던 삶에서 다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은 몇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었던 공허함이 차지한 자리. 아내, 엄마로서 산 시간, 그곳에 다시 오롯이 나의 삶을 채워 넣어야 했다. 


지금의 시간은 알에서 껍질을 깨고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껍질을 깨고 나오기까지의 여정은 또 한 번의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오십 대의 열정이 이런 것인가?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계획된 삶은 아니지만, 하루 중엔 나를 위한 삶이 내재되어있다. 그동안 덮어두었던 나의 작업대를 펼치고 그림에 다시 집중하기로 한몇 년의 시간이 말을 해 주듯 나를 위한 투자를 하고 있다. 거창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우는 하루가 너무 값지고 소중하다. 학창 시절부터 쓰던 파렛트, 붓, 쌓아 놓았던 캔버스도 하나씩 꺼내어 보았던 첫날, 난 그토록 설렐 수가 없었다. 먼지가 풀풀 날아올라 코를 자극했지만 괜찮았다. 손끝에 묻은 때만큼 모든 것이 정지되어있던 나의 삶으로 뛰어들기에 좋은 시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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