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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트 Jun 22. 2022

제주 여행기

작은 섬 우도

2022년의 유월        

공항이 가까워질수록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마침내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계속 우중충한 날씨로 하늘 가득 먹장구름을 안고 있던 날이 많았던 요즘, 하필 여행 당일 날 버티지 못하고 먹빛을 뿌리 듯 심술을 부리며 내리는데 비의 양이 제법 많았다.                

아들이 군대에서 제대하고 같이 하기로 한 가족 여행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도중 비가 많이 오는 탓인지 차는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었다. 다행히 일찍 서둘러 나온 덕분에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큰 위안이 되었다.        

바깥 날씨와는 상관없는 듯 차 안에선 요즘 유행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얘들은 흥얼거리며 기분을 상승시켜주었다. 얼마 전 큰 얘가 군대를 제대한 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여행이라 감회가 더한지도 모르겠다.                 

목적지는 우리 가족 모두가 사랑하는 제주도 함덕이다.            

함덕은 누구 집 애 이름도 아닌데 여행하면 우리 집에선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가 되어 버린 곳, 다른 어떤 곳보다 애착을 가지며 찾게 되는 휴양지 함덕은 우리 가족 만장일치로 여전히 사랑을 독차지하는데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함덕을 중심에 놓고 먼저 우도를 거쳐 함덕 그리고 제주시를 마지막 코스로 잡았다.                     

출발 전 이른 아침부터 잠을 설친 탓에 비행기에 몸을 싣고 곧 곯아떨어져 비몽사몽 헤매다 기내 방송에 눈을 떠보니 비행기는 어느샌가 제주 창공에 떠 있었다.                     

제주의 하늘은 서울의 날씨와는 상반된 화창한 공기가 여행객을 맞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짠내 나는 바닷바람이 먼저 느껴지는 곳, 제주도라는 게 실감이 가는 순간이다.                        

렌터카를 빌려 네 식구 몸을 싣고 다시 목적지로 달리며 시야에 나지막이 오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번 여행은 우도를 먼저 일박하기로 하였기에 우리를 실은 차는 성산포항으로 향했다.             

몇 분을 갔을까 멀리 성산일출봉이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성산포항에 다다르자 공항에서도 성수기 못지않게 많았던 인파가 여객선을 타는 항구에도 여전히 붐볐다. 우리 가족은 우도로 가기 위해 표를 끊고 배에 차를 그대로 승선시키며 여행의 출발을 알렸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힘차게 출발한 여객선은 잔잔한 바다를 가로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뱃길로 성산포항에서 약 십 분 거리의 작은 섬 우도, 섬에 가까워질수록 낮은 집들과 푸른 숲이 눈에 들어왔다.            

거칠지만 부드럽게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섬 우도는 여느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사연이 숨어있을 것 같은 그런 묘한 매력이 순간 밀려왔다. 짧은 시간 타고 온 여객선은 어느새 우도에 도착하고 우린 차에 몸을 실은 채 그대로 배에서 하선하여 숙소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유월의 바다는 우도만의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좁은 도로를 달리며 우리는 우도의 색다른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남녀가 자전거를 타고 앞을 지나가는가 하면 가족들이 이륜자동차를 타고 달리기도 하였다. 무조건 달려오는 자전거와 이륜자동차로 매우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야 했지만 너나 할 것 없이 활기차 보이는 모습에 우리 가족도 덩달아 웃음을 짓게 했다. 만약 우도를 다시 들린 다면 자전거로 섬을 둘러봐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숙소로 정한 펜션에 들어서며 젊은 주인분의 친절한 미소에 기분이 가벼워졌다. 정원에는 울긋불긋 다채롭게 활짝 핀 수국이 화려함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어쩜 그렇게 탐스러운지, 수국에 이끌린 딸은 인생 샷을 찍겠다며 연신 셧터를 눌러댔다.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정원을 둘러보다 짐을 풀기 위해 이 층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외관과는 다른 실내를 보며 조금은 실망을 감추고 신발을 벗어야 했다.                         

바닷바람과 해무 덕분인지 창이 뿌옇게 세월을 말해 주고 있었고 시커먼 곰팡이가 창틀에 그대로 박혀 있어 조금은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싱크대로 고개를 돌리니 가스레인지엔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음식물이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고 좀처럼 짐을 풀 생각을 못하게 됐다. 그래도 남편이 애써 겨우 찾은 펜션인 걸 알기에 나를 포함한 얘들도 투정을 하진 못했다.                           

모두 마음의 환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우리는 시선을 돌려 창 밖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로 눈길을 주었다. 이 층에서 바라본 바다는 정겨웠다. 그리고 건너편 성산일출봉부터 제주도의 한 면이 눈에 들어와 기분을 전환시켜 주었다.                         

실내를 쭉 둘러보다 리모델링 중이라던 남편의 말이 떠 올랐다. 그게 벽마다 새로 페인트를 칠했는지 하얀 게 유독 깨끗한 인상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얀 벽에는 모기의 슬픈 마지막 생을 얘기라도 하듯 꾹꾹 눌린 흔적이 여럿 보였다.             

난 벽과 천장을 쭉 훑어보며 숙소를 거쳐간 이들의 말 못 할 모기와의 전쟁이 그대로 그려졌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거쳐 갔을까.             

숙소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 뒤 우리는 숙소를 나와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섬 전체를 돌아보는 시간은 약 사십 분 정도 소요되는데 매우 이색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제주도를 축소시켜 놓은 듯하지만 우도만의 이국적인 풍경도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곳의 주민분들은 특유의 여유로움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정말 급할 것도 재촉할 것도 없는 느림의 미학이 숨 쉬는 듯했다.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옆에서 딸과 아들 그리고 남편까지 그곳의 여유로움에 대해 똑같은 소리를 한다.         

그래서일까. 내 마음도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몇 시간 코스로 둘러보던 여행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분주하던 섬이 갑자기 잠을 자 듯 멈춘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정지한 느낌, 난 순간 그런 감정을 느꼈다.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 앞에서 정말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갑자기 어느 순간 다 사라지고 조용한 섬만이 길게 호흡하며 그 자리에 말없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오묘해지는 그런 감정을 뒤로하고 보니 오히려 우도의 낭만이 시작되는 시간은 해가 질 무렵, 그 시간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해무 덕분인지 정원의 자리마다 이슬이 빗방울처럼 내려앉았다. 정말 작은 섬 우도가 깜짝 선물을 한 것처럼 신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시간 숙소를 나와 바깥으로 산책을 나가려고 주위를 둘러보니 우도 주민도 하나 지나가는 이 없고 가로등도 없는 어둠뿐이었다. 방파제 앞으로는 배 두척이 등대를 등지고 밤을 지키고 모두 칠흑 같은 어둠만이 함께했다.

그나마 등대가 밝히는 빛에 따라 돌담길 위에 앉아있던 어린 고양이 두 마리가 시선을 끌 뿐이었다. 빛이란 그것만이 유일했다. 좀 더 산책을 하기 위해 발길을 돌리다 어둠 속에서 긴 머리를 한 허수아비가 뒤에서 나풀거리는 바람에 순간 온몸에 닭살이 올라오는가 하면 간이 다 녹는 기분이었다. 어둠 속의 그 기분이란 당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숙소에서 나오다 물질을 끝내고 나오던 해녀분을 만났다. 우리 가족은 마법에 이끌리 듯 그분을 그냥 따라갔고 해녀 분들이 하는 식당으로 들어가 갓 잡은 성게 비빔밥을 먹었다. 싱싱한 성게가 제법 푸짐하게 올라간 비빔밥을 비벼 한 입 입으로 가져가면 신선한 성게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런 맛이었다.

           

아침 식사의 여운이 아쉬워 점심은 다시 성게 김밥으로 하기로 했는데 그곳도 해녀 분들이 하는 곳이었다.        

잠시 뒤 주문한 성게 김밥이 나왔고 돌돌 말린 김밥 위에 성게가 먹음직스럽게 올라가 있는 비주얼은 우리 눈을 사로잡았으며 현지에서만 볼 수 있는 참맛이었다.    


        

눈으로 먼저 먹고 입으로 먹는 김밥은 즐거움을 두 배로 선사했다.            

점심을 끝으로 하고 조금은 아쉬웠지만 우도의 땅콩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제주도 함덕으로 가기 위해 우도 천진항으로 향했다.   

우도를 다녀온 뒤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는 까닭은 며칠 전이라 더한지도 모르겠다.         

우도의 정경은 정말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특히 그곳 특유의 여유로움과 우도의 밤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긴 머리 허수아비마저도 말이다. 그런데 더더욱 잊히지 않을 것 같은 그날 밤 숙소에서 벌어졌던 모기와의 전쟁은 우리 가족 모두의 기억에 더 남게 해 주었다.         

밝은 형광등 밑 소리 없이 유유히 날아다니던 작은 생명체 모기, 모기향을 피웠음에도 우리는 모기와의 전쟁이 계속되었다. 아들은 휴지로 '퍽', 난 손으로 '탁' 다들 모기와 한 차례 전쟁을 하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남편은 두 군데를 물렸다. 우리도 앞서 다녀간 이들처럼 몇 마리의 슬픈 흔적을 벽과 천장에 남겨두고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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