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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트 Aug 19. 2023

누워있는 여자

8. 이런 개그라면 사양하겠어요.

막내는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가까운 거리에 갈만한 병원들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다행히 아직 문 닫지 않은 병원이 몇 군데 있었고 쉽게 숙소 근처의 정형외과를 찾아낼 수 있었다. 넷째와 딸에게 어린 왕자를 맡겨 놓고 난 언니, 막내와 함께 숙소 밖으로 나왔다. 

곧이어 예약한 택시가 도착하고 난 언니의 부축을 받으며 택시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다다른 병원에는 영업시간이 끝난 뒤라 그런지 조명 하나만 켜진 어두운 실내에 남자 직원 한 분이 수납하는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병원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를 지켜보던 직원은 나의 몸 상태를 묻고는 곧바로 의사가 있는 진료실로 안내했다.      


진료실로 들어선 나를 보고는 아픈 부위가 어디냐고 의사는 물었고 난 허리 부분을 가리켰다. 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척추 전체를 툭툭 치더니 아픈 부위가 어디며 어느 정도의 고통이 있는지도 물었다. 그런데 난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감도 오지 않았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나의 대답이 끝나자 의사의 대답 또한 까칠하고 명쾌하게 짧았다.    

 

“그럼 골절은 아닙니다.”     


의사의 퉁명스러운 말투는 신경이 쓰일 정도로 상대방을 자극하는 무엇인가 있었지만,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는 건조한 말을 들으며 진료실을 나와야 했다. 하얀 가운을 걸쳐 입은 의사의 인상은 아픈 와중에도 실내의 조명만큼 어두운 구리색 낯빛과 함께 몹시 도드라져 보였다. 

난 의사의 지시대로 엑스레이를 촬영하고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심각하게 쳐다보더니 일관성 있는 삐딱한 자세로 날 한번 쳐다보고 또 심각한 표정으로 엑스레이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말했다. 척추의 위쪽, 즉 경추인지 아님 흉추인지 지금은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지만, 위쪽 몇 번이 앞으로 쑥 나와 있다고 하였다. 허리 아래로는 문제가 없지만, 위쪽이 과거에 다친 것으로 상태가 안 좋다는 얘기였다. 의학 지식이 전혀 없는 나로선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납득가질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언니와 막내도 덩달아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리의 통증으로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곳이 아니라 척추의 위쪽이 심각하니 입원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큰 병원으로 가 보라는 답변에 언니와 막내 그리고 나 또한 의아했다. 

그런데 어설픈 돌팔이든 명의든 의사의 말 한마디에 난 정말 척추의 위쪽이 아픈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하여 자세를 곧추세우려고 하였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선 복잡한 마음만 일어 종잡을 수 없는 감정만 밀려왔다.      

병원 분위기, 거기다 의사의 태도까지 황당한 개그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연출이 너무 완벽해 상황 자체가 허구인지 현실인지 경계가 정말 모호한 게 쓴웃음이 비집고 나오려 하였다.  


그때 진료실을 나와 수납하는 우리 뒤로 개그를 친 의사도 덩달아 따라 나왔다. 그리고는 서 있던 언니와 날 힐끔 쳐다보고는 쌩하니 다시 진료실로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방심하다 또 한방의 완벽한 퇴장에 갈채를 보내고 싶었다.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개그에 씁쓸한 감정만 덤으로 얻었다.

  

정말 저런 사람도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를 볼 자격이 있는지, 그날만 사적인 문제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누군가는 병 고치려고 갔다가 병만 얻어가지 않을까? 하는 아쉬운 내면의 목소리가 자꾸 올라왔다.


항상 행동이 민첩한 막내는 금세 인터넷으로 뭔가를 찾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의사는 야간만 담당하는 의사래. 여기서 나가자.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아!”     


언니와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막내 얼굴만 쳐다봤다. 그리고 막내의 현란한 손은 빠르게 움직이더니 근처의 다른 병원을 또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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