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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트 Aug 23. 2023

누워있는 여자

9. 진단 결과

‘언니와 막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도 얽히고 뒤섞여 좀처럼 안정되지 못하고 어수선하기만 하다.’      


병원을 나온 우리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제법 큰 병원에 도착했다. 그곳도 진료 시간이 끝나고 응급실만 한 분의 의사와 간호사 몇 분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의사는 매우 젊은 남자였는데 앞서 다녀온 병원의 진단 내용을 전해 듣고는 허리와 윗부분의 척추까지 CT 촬영을 한 뒤 결과를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난 의사의 지시대로 CT 촬영을 하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뒤숭숭한 마음이 검사 결과로 좀 더 편해지길 바랐다. 잠시 뒤 CT 촬영 결과가 나오고 난 의사 옆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고 난 제발 골절이 아니길 바라며 의사를 간절히 바라보았다. 묵묵히 컴퓨터를 지켜보던 의사는 대뜸 허리를 예전에 다친 적이 있냐고 물었다.     


‘예전에...’     


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골똘히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릴 적 음식점을 나오다 엉덩방아를 찧은 적을 제외하면 딱히 허리를 다치거나 아팠던 적도 없었기에 고개만 갸웃거리며 오전에 넘어져 그런 건 아닌지를 조심스레 되물었다. 

의사는 컴퓨터를 재차 들여다보고는 CT 촬영상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며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고 언니와 막내도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척추 위쪽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단지 흉추 12번 요추 1번 사이에 과거 다친 흔적이 보인다는 거였다. 그리고 말하길 다친 곳은 관리를 잘해서 어느 정도는 괜찮은 상태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곳을 그냥 놔두면 안 되고 시멘트 수술을 받아야 하니 정확한 건 월요일 되면 과장 선생님에게 여쭤보라고 했으며 그러려면 입원해야 한다고도 했다.      

의학 지식이 전혀 없는 나로선 답답하기만 했다.      


‘시멘트 수술? 지금 다치지 않았다고?’      


의문이 계속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진단 결과가 터무니없는 결과였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현재 다친 건 아니라니 다행이라고도 해야 할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으나, 옆에서 좋아하는 언니와 막내를 보니 더는 뭐라 말할 수도 없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진단 결과가 그렇다 보니 통증은 넘어지면서 다른 요인으로 심하게 동반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추측도 동시에 하게 되었다.     


언니는 잘 움직이지 못하는 날 챙기느라 간호사를 통해서 그리고 인터넷으로 의료보조기 파는 곳 몇 군데를 알아보다 다행히 연결이 닿는 곳이 있다며 좋아했다. 곧 그곳 사장님이 급히 달려왔고 그분은 나의 허리 치수를 재고 서둘러 돌아갔고 잠시 뒤 허리 보호대를 가지고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언니를 지켜보던 막내는 그렇게 긴장된 언니의 모습은 처음 본다며 낮은 소리로 알려주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언니의 모습에 난 가슴만 먹먹해 왔다.      

허리 보호대를 착용하고 무작정 병원에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현재 다치지 않았다면 집으로 올라가서 모든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더는 피해를 줄 수 없었기에 처방해 준 약을 챙겨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밤이 깊었지만 허리 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긍정적인 마음도 그럴 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바짝 마른 생명이 없는 나무의 비틀어짐 그런 몸의 호소가 입을 자꾸 타들어 가게 했다. 옆에서 자는 딸의 숨소리, 어린 왕자의 새근거림 그리고 누군가의 뒤척거림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간 그렇게 날은 밝아왔다. 일어나서 먼저 진통제를 삼켰다. 통증이 잦아들어 한결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 월요일, 남편과 함께 늘 정해놓고 가는 신경외과를 찾았다. 그곳은 의사 선생님을 매우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분은 늘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을 정도를 지키기도 했다. 큰 아이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다녀갔던 병원과의 인연은 한번의 신뢰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은 병원임에도 평온한 마음을 갖게 해 주는 곳이다. 그날도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촬영 사진을 지켜보시던 선생님은 요추 1번이 골절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골절 부위가 안쪽인 신경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라며 내려앉은 척추의 높이도 자로 재어주며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괜찮다고 다친 정도가 위험 수위가 아니라고도 했다. 삼 개월 정도 안정을 취하며 누워있길 권했다. 그러면 별일 없을 거라는 얘기도 덤으로 해 주셨다. 더 정확한 진료를 위해서 CT 촬영하길 권했고 결과는 앞과 다르지 않았다.     


난 너무 생뚱맞았다. 요추 1번 골절이라니, 그럼 앞서갔던 병원 두 곳의 진단 결과는 다 뭐란 말인가? 난 어처구니가 없어 정말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상반된 결과만큼 나의 마음도 상반된 감정이 일었다. 마음의 변화에 따라 몸이 반응하는 속도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난 재차 의사 선생님께 되묻듯 말했다. 혹시 요추 1번 골절이 예전에 다친 게 아니냐고 그리고 시멘트 수술을 해야 하냐고 말이다. 되돌아온 대답은 엑스레이 결과만 보더라도 현재 다친 게 명확히 보인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무렴 어떠랴. 명확한 무언가를 갈구하던 난 속이 후련했다. 다친 건 다친 거고 수술 없이 나을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앞서 두 병원을 다녀오고 안개처럼 가려져 있던 머릿속도 들쑤시던 마음도 감정의 기복 없이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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