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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트 Aug 30. 2023

누워있는 여자

11. 삶이란

하루종일 장대비가 내리더니 잦아들고 가늘게 이슬비가 내린다. 난 가벼운 우산을 들고 발길을 산책로로 향했다. 뒷산에 걸쳐있는 낮은 구름도 운치를 더하고 신선한 공기마저 무르익은 맛이랄까, 난 계속 무언가를 읊조리게 된다. 자연이 담고 있는 경이로움, 이런 변화무쌍한 자연의 매력은 보는 이의 시선 또한 매번 감동케 만든다.      

어제의 작달막한 달맞이꽃이 오늘 와 다시 보니 어느새 여기저기 노란빛으로 쑥쑥 자라 있다. 강한 생명력을 느끼는 순간이다. 누군가의 발길에 무심코 밟힌 풀 한 포기도 내일이 되면 꺾이지 않는 근성을 발휘하며 다시 푸르게 되살아나 삶의 본질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자연이다. 

난 그런 자연을 닮아가고 싶다.      


사고 뒤 회복하며 바뀐 일상 중에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단연 맨발 걷기라고 할 수 있다. 맨발 걷기를 하는 이웃들을 봐도 엄두가 나지 않았던 지난 시간을 뒤로하고 지금의 나는 신발을 벗고 산길을 걷는다. 맨발로 한발 또 한발 사람들이 찍어 놓은 흔적을 밟으며 흙길을 걷는다. 그러다 보면 차가운 기운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데, 그 기운이 나쁘지 않다.      


‘발에 닿는 감촉이 이런 느낌이구나.’     


숲길을 걷다 보면 더운 열기도 잠재워 주는 숲의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도 좋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산책로가 이어져 있는 숲길을 찾게 된다. 평온한 마음으로 깊은 호흡을 하며 숲길을 걷다 보면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게 될 때도 많다.      


누워 지내야 했던 시간, 난 모두에게 감사했다. 그런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작업에 매달렸다. 누워서 그림 작업을 한다는 건 다소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일상이 되어 습관처럼 몸에 익숙해져 갔다. 처음엔 그렇게 불편했던 것들이 어느새 숙달되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 간 것이다.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그림에 매달리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빠르게 내달렸으니까. 좋아하는 작업을 하며 보낼 수 있어서 무료하고 힘든 시간을 행복하게 채울 수 있었다. 또한 사고 후 매번 걸려오던 언니와 두 동생의 전화를 받으며 위로도 받고 용기도 얻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송정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의 해프닝 몇 가지가 떠올라 모두 걱정스러운 안부를 묻다가도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언니의 웃음기 섞인 말투에 나 또한 가시지 않은 여운이 남아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휴! 큰일 날 뻔했지. 그래도 골절인 걸 모르고 올라왔으니 통증을 덜 느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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