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동의서

by 박정원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

“나 좋은 사람을 만난 거 같아! 결혼할 거야”

“정말? 정말 신난다. 정말 신나는 일이야. 우리 막내가 그리 헤매더니 드디어 친구를 만났구나?”

“좋으냐?”

“좋아, 많이 ”

“그런데 엄마 이 친구가 앞은 못 봐!”

“...”

“...”

“야 거 좋다! 그 친구는 앞을 못 보고, 넌 마음이 아프니 서로 감싸주며 살면 좋겠다.”

“그렇지?”


나의 어머니는 H의 얼굴도 보지 않았고, 건강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르고, 직업도 모르고, 그런 채 짧은 침묵 후 아주 쾌청한 제주 가을 하늘처럼 승낙하셨다. 20대가 지나 부모로 부터 독립을 한 후 나의 20년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이렇게 간단한 답으로 줄만큼 진했던 모양이다. 그녀도 간밤에 묘한 꿈이라도 꾸셨던걸까 막내딸의 일생일대 짝짓기를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다는 듯이 기다렸다는 듯이 가벼운 체스를 두듯이 맞이 하셨다.


운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순간은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를 늘 이해해주는 엄마가 그저 고맙고, 나의 친구를 당신의 친구로 맞이해주셔서 감사하고, 우리 둘을 믿어주니 우리는 그냥 약속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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