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

by 박정원

화창한 봄날,

H는 원룸을 벗어나서 확 트인 자연으로 가고 싶어 했다. H가 선택한 것은 내가 한시 출근할 때 수목원에 데려다 달라는 거다.


“수목원에 오빠 혼자 가겠다고?”

“답답해서 노래 좀 부르고 싶은데 여기는 안 되잖아. 출근할 때 같이 나가면 안 될까?”

‘나도 바쁜데….’


여유 없이 정신없이 출근하면 종일 피곤하다. 안전도 그렇고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의 행동은 느려지고 뭔가 하기 싫은 모양새다. 안전도 중요하거니와 수목원에서 딱히 누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꼭 필요할 때는 내가 달려가야 하므로 다소 부담스러운 거다. 그러나 H는 그런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지 기타를 메고 하모니카 가방을 챙기는 모습이 천상 소풍 가는 아이 얼굴이다.


‘내 속 좀 들여다보세요. 왕자님!’


결국, 승낙하고 난 부담스러운 맘으로 출발한다. 물도 챙겨야 하고 배고플까 봐 간단한 오메기떡 하나 두유를 내어준다. 나라면 이런 것들을 큰맘 먹고 계획할 텐데 그에게는 그냥 평범한 일상처럼 보인다. 수목원에 도착하고 한 삼십 분 정도 주변을 탐사한다. 화장실은 어느 정도 있는 곳과 가까워야 하고, 위치와 동선을 한 번 맞춰봐야 한다. 다음으로는 주변 반경 5m 정도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야 하고 특히 부딪힐 만한 곳은 미리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그는 내가 있는 동안 맘 놓고 탐색을 하는 듯하다. 굳이 안 가도 될 거로 생각했던 비탈진 풀숲도 기어이 올라가 보고 만다. 그 공간을 한 50% 알았을까? 나는 출근 시간이 거의 되었지만 그가 혼자 뻘쭘하게 기타를 꺼내는 게 내심 맘에 들지 않아 몇 곡을 청한 뒤 인파 속에 그를 남겨두고 출근을 한다. 그냥 잊기로 했다. 잊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걱정은 신에게 주고 나는 나의 삶으로 간다.


그 후 우리는 한두 시간 후쯤 통화를 한다. H가 화장실을 못 찾고 헤매고 있다 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화상통화를 해야 한다.


“보여?”

“어”

“잘 좀 해봐. 앞쪽을 보여 줘야지! 어디를 가는 거야? 오빠”

“Stop!”


난 걱정에 그를 세웠다. 난 답답한 나머지 내 핸드폰을 앞쪽으로 더 앞쪽으로 가져다 놓는다.


“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 비탈진 풀숲도 들어갔다가... 결국, 화장실 입구까지 가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다. 나의 일터에서의 일로도 복잡해져 있는 중인데 나의 일은 어디로 가버리고 두통이 좀 생긴 것 같다. 우리는 4시간 후 만난다. 교통약자 차량이 안 온다고 해서 내가 그를 데리러 가야 했다. 교통약자 차량은 운 좋으면 10분이어도 배차가 되지만 바쁜 시간(출퇴근)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기약이 없는 경우도 많다. 10여 년 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황이지만 우리같이 택시 보이면 손을 들어 불러 세울 수는 없는 거다. 생활 속에 이것저것 나의 관념을 흔든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들, 소위 상식적인 것들이 온통 아수라장이다. 화도 난다.


“안 되는 게 뭐가 이렇게 많은 거야?”


퇴근 후 서로 오늘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오늘 직장에서 불쾌했던 일들, 이해 안 가는 일들, 누가 어떻고 누가 어떻고 한 보따리 부정의 언어를 쏟아냈다. 나는 한참 상기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뭐라고 말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난 나의 일도 있고 당신 일도 하느라 지쳤다고요!”


그는 별말 없이 듣고는


“어 잘했어, 어 그런데 있잖아…. 나도 이야기해도 돼?”


본인 이야기를 할 차례가 되자 얼굴이 어린애처럼 변하고는 그의 오늘 일을 신이 나서 말하기 시작한다. 너무도 흥미진진한 얼굴이어서 나도 어느새 자기 일은 저 발밑으로 내던져두고 쫑긋 귀를 세운다. 뭔가 또 속는 기분이다. 저 얼굴에 대고 얼음 같은 잔인한 말은 절대 할 수 없는 것.


H는 처음에 수목원에 갔을 때는 수줍어서 고개도 못 들고 조그맣게 노래를 했다. 상황을 계산할 수 없으니 나름 눈치를 보는 거다. 그러나 수목원에 이러려고 온 거는 아니기에 그 후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노래도 목청껏 부른 것이다. 한 곡, 두 곡 부르면서 자신감도 찾고 소나무 숲에서 그 맑은 공기와 호흡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건 (나도 당연히 부러운 거니까) 너무 좋았다고 한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주변 상황을 알고 한 것은 아닌 듯싶다. 사람 소리는 들려도 누구라는, 어떤 행동을 하면서 있는지,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는지 등의 정보는 아예 없는 거니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그는 멀어져 있는 상태였다. (나는 늘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는데 말이지)

그때 마침 주변에 서귀포 어린이집에서 놀러 온 아이들 30명가량이 H와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었던 거다. 그중 몇몇 아이들이 H의 하모니카 소리 듣고 흥미롭게 다가왔고 H가 아이들에게 기타 연주하는 걸 조금 가르쳐 주기도 하고 하모니카도 연주해 주니 아이들도 신이 났던 모양이다. 노래도 함께 부르고 기타도 치고 오랜만에 재미있게 놀았다고 한다. 네 시간이 금방 갔다고 했다. 아이들도 시간이 되었는데도 떠날 생각을 안 해서 자신이 당황하기도 했다 한다.


“기분 좋았겠네요~”

“아이들 앞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기분이었어. 관객이 있으니 좋더라. 네가 좋아하는 ‘섬 집아이’도 불러줬어”


낯선 곳을 가는 게 늘 긴장되고 스트레스받는다고 하지만 H는 늘 그가 바라는 대로 잘 간다.

그가 바라는 대로 즐긴다. 우연에 의한 순간을 잘 즐기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게다가 소리와 촉감만으로 그 우연을 받아들인다는 게 더 어렵지 않던가.

기적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그 순간 일어난다.

어린아이 같은 그가 참 좋다.

모든 곳에 가장자리만 찾아 그것을 지표 삼아 걷고,

주위에 누가 보든 상관없이 그의 모양 그대로 지팡이 끝에서, 발바닥에서, 코의 공기에서….

그것만을 집중하며 걷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충분히 받아들인 H는 본인도 알까? 그가 정말 행복해 보이는 것을.

난 어디를 보고 걷고 있을까?


인터뷰


J: 오빠! 눈 나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앞이 보이면 오빠 더 행복해질 거 같아요?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당신 행복해지는 쪽으로 선택하고 싶어….

H: 어 보고 싶어. 빛이라도 보고 싶어. 지팡이 짚고라도 혼자 걷고 싶고, 너를 마중하러 아파트 주차장에 기다리고도 싶어. 혼자 길로 다니는 게 얼마나 부러운데. 앞이 안 보이면서, 점점 안 보이면서, 나중에 빛조차 안 보이고 나니 그 빛만 보이는 것도 좋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게 다야.

J: 그게 다라고?

H: 지금 난 좋아. 일도 할 수 있고 난 대충 다 잘하잖아. 그리고 앞으로 로봇도 있잖아. 나에게 주어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

난 보이지 않는 지금이나,

보였던 그때나,

앞으로 운이 좋아 보이게 되더라도

난 내 인생 이대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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