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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에 대한 기록 01

잘 읽히지만 다소 난해한 '무라카미 하루키'

by 김경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한꺼번에 사다 놓은 아들덕에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기 전 제목으로 봐서는 추리소설 장르가 아닌가 했었다. 하지만 첫 챕터를 읽자마자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과 그의 그림자가 분리된다는 설정부터 파격적이었다. 이 설정은 하루키의 최근 소설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는 아예 그 얘기를 전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 하루키는 이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있었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는 그 세계관을 만들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듯하다. 하루키의 소설이 그렇듯이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독자들이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사람과 그의 그림자를 분리하다니,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현상에는 정말 위배되는 현상이다. 물론, 피터팬도 자기의 잃어버린 그림자를 찾으려고 웬디의 집에 들어오게 되니 사람과 그의 그림자가 분리되는 세계관은 있기는 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과 그림자가 분리되어 있는 곳이 원더랜드이지 않나 싶다. 그렇지만 피터팬의 원더랜드와는 완전 다른 곳이다. 사람이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벽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도시를 이루며 사람들이 제각기 맡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원더랜드에서 정착하려면 자신의 그림자와 분리되어야 하며 그림자가 죽고 없어지면서 자기의 마음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야 완벽하게 원더랜드라는 도시에서 지낼 수 있다. 아직 마음 혹은 기억이 있다면 원더랜드에 있더라도 숲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사람이 마음이 없다면 어떤 걸까? 과연 마음 없이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인가? 그래서 주인공도 갈등하며 다시 그림자가 있는 사람으로 돌아가려고 하기도 한다.

이 원더랜드와 대치되는 세계의 끝에서는 원더랜드로 가기 위한 여러 가지 과정들이 나오게 되는데 그 통로는 일각수를 통해서 이지 않을까 한다. 소리를 소거시키고 세계의 끝을 향해 가는 과정이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와닿지 않고, 환상적 사고로 접근해야 알 수 있게 되듯이 말이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과 이어져 있는 세계관을 한꺼번에 오롯이 느껴 보려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먼저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는 반대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먼저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 독자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책장도 잘 넘어가며 읽는 즐거움을 주기에 시간을 들여 읽어 볼만하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면서 읽게 되면 재미도 없어 지려니와 왜, 왜, 왜 하는 질문만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림자는 그를 만들어 내는 본체와 분리될 수 있을까? 우리가 밤이라고 부르는 것도 지구의 그림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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