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설로 지은 집
여름밤을 겨울 집에서 지내기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다. 그 밤 집 거실에 자리를 잡고 문득 든 생각이다. 나 자신을 위로하자고 억지로 지어낸 게 아니다. 삶이 구렁텅이에 처박히면 홀연히 피어올라 연기처럼 나를 휘감는 문장이다. 손으로 쥘 수 없는 그 문장이란 위인은 노트북도 아니요, 사다리나 구명보트도 아니요, 더구나 시대를 관통한 만병통치약이나 진배없는 돈도 아니건만, 나를 시궁창에서 건져내는 구세주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부엌문 고리를 따고 들어간 부엌에서 조심스레 거실로 통하는 쪽문을 밀자, 집 속살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냉장고며 이단 책꽂이와 의자가 눈에 띄었다. 한눈에도 내가 떠났던 지난겨울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의자를 밀치고 배낭을 내려놓았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안방과 건넌방이 어떤 꼴인지 들여다볼 엄두가 안 났다. 내일 일은 내일 치러내면 되는 것이고, 나는 오늘 밤에 충실해야 했다. 전기 안 들어오는 집에서 어둠을 벗 삼아 이 밤을 무슨 수로 버텨내나.
가능한 한 빨리 밤을 흘려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하여간 아침으로 치닫는 밤이 빚어내는 ‘사람 심장을 뜯어먹는 시간’을 느껴서는 안 된다. 눈을 감았다 뜨면 곧장 아침을 맞이하기를! 더구나 여름옷을 입고 겨울 집에 들어온 내가 아닌가. 여름옷차림으로 집 구석구석에 손을 댄다는 건 겨울에서 멈춘 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기로 작정했다. 계절을 거슬러 겨울을 사는 집을 존중하라!
오늘 밤을 무슨 수로 후딱 보낼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집과 동거하기로 한 나로서는 절박한 물음이었다. 나는 엄숙한 제의를 치르는 양, 손으로 느릿느릿 비닐봉지에서 막걸리를 꺼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국도에서 강변으로 접어들기 전, 앙성면 마트에서 미리 사둔 구호물자들이었다. 넉 달 만에 기어드는 집이 온전치 못할 것은 뻔했고, 생존에 위기를 느낀 내 본능이 시키는 대로 나는 라면과 비상식량을 챙겼다. 배낭 옆구리에서 꺼낸 신문지를 깔고 과자와 생수를 펼쳤고, 어둠을 단숨에 날리려고 한복판에 촛불을 밝혔다.
거미줄 같은 어둠이 둘러쳤던 집이 화사하게 깨어나는 기쁨이라니! 이로써 집은 더는 전기 나간 죽은 집이 아니라 생명을 얻었고, 동거인을 자처한 나의 집전으로 부활했다! 죽어가던 집을 가볍게 되살린 나는 자축하는 뜻으로 막걸리를 한입 마셨다. 물론, 나의 귀환을 스스로 반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폐기물이라고 깔아뭉갰던 집에 용서를 구하는 것도!
아직 유리문도 열지 않은 껌껌한 거실에 촛불을 밝혀놓고, 막걸리와 과자부스러기, 라면 봉지, 생수를 우두커니 굽어보는 한 사내가 있는 풍경.
촛불이 빚어낸 그림자가 안방 문과 사면 벽에 번졌다가 천장으로 꺾이는, 논에서 울렸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개구리 합창이 이따금 적막을 파고들지 않았다면, 사내는 집에 딸린 걸상이나 양은 밥상처럼 집의 한 부속물에 그쳤으리라. 촛불에 비친 얼굴은 또 어떤가. 넘실대는 불꽃이 붉게 물들인, 그 촛불에 눈을 마주한 얼굴을 스스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사내는 무척 위로받으리라. 바로 앞에 거울이 있어 촛불에 번들대는 자기 얼굴을 봐야 한다면, 사내는 기절초풍해서 자리를 박차고 마당으로 뛰쳐나갈지도 모르리.
애초에 잔이 없었기에 나는 막걸리를 통째로 쥐고 찔끔찔끔 입에 댔다. 이 황당한 사태는 현실인가? 정말로 나에게 닥친 일인가. 나는 자신을 촛불을 마주한 사내로 변주했듯이, 전기 나간 집에서 겪는 이 밤 풍경을, 내게서 따로 떨어내어 한 폭 그림을 내걸 듯 허공에 펼쳐 걸었다. 그 제의에 필요한 성수는 물론 막걸리였다. 여름옷을 입고 겨울철에 머문 집에서의 하룻밤을 눈 깜짝할 새에 넘기려고, 나는 막걸리를 벗 삼았다. 이런 식으로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었던가. 벗들과 흥겨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취기에 실려 갔지, 이 밤을 아침으로 단박에 건너뛰자고 억지로 술을 먹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알면서도 나는 술을 수면제로 삼았다. 그러니 술맛이 있을 리 없었다. 어둠과 침묵이 짓누르는 집에서 그나마 생명체처럼 흔들리는 건 촛불이었다. 그 미세한 떨림을 눈에 새기며 나는 잠의 전령사 막걸리를 홀짝거렸다. 문득 생수를 사면서 막걸리를 안 챙겼으면 어찌했을까를 상상하니 그야말로 아찔했다. 생수로 목을 축이고 멀쩡한 정신으로 잠을 청해야 한다면 이 밤은 불면과 고통으로 참혹했으리라. 그 끔찍한 상상을 지워버리고자 나는 막걸리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텁텁한 앙성 막걸리 고유한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액체 수면제라고나 할까, 목을 타 넘는 막걸리를 음미할 새도 없이, 어느 순간 한없는 쓸쓸함이 내 등을 쓸어댔다. 그것은 한낱 그림자처럼 넘실대다 스러지는 게 아니라 냉기를 잔뜩 머금은 물안개처럼 나를 싸고돌았는데, 무어라 꼬집어 표현하기에는 단어와 문장이 마땅치 않았다. 다만 왜 이런 밤을 겪어야 하나? 라는 물음으로 그 실체를 드러냈다. 그야말로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듯 통렬하게 나를 엄습했는데, 막걸리로도 도무지 감당하기에 버거울 만큼 쓰라린 고통을 동반했다. 이참에는 소설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어설프게 소설로 치장했다간 인생이 망가지는 것이었다. 한 번뿐인 인생이 파멸로 치닫고 나라는 인간은, 산산이 부서진 나라는 인간은 한 줌 연기처럼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리라. 전기 나간 집에서 부대끼는 오늘 밤이 과연 내가 치러내야 할 삶인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건 인생을 건, 원초적 불안에서 비롯된 공포이기에 하는 말이다. 글쓰기에 목을 맸다가 실패한다면? 실패는 나중 문제로 넘긴다 치자. 글쓰기 말고도 얼마든지 다른 인생이 있지 않은가. 요리사, 교사나 교수, 출판일, 증권사 직원, 신문기자, 이발사, 엘리베이터 제조회사 노동자, 배우, 건축사, 문구점 주인, 손으로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이 세상에는 생존방식이 널리지 않았나.
왜 하필이면 글쓰기였을까. 백 번 물음을 던져도 여기엔 명확한 답이 없다. 글쓰기를 신비로운 마술램프로 포장하자는 게 아니다. 인간의 삶을 주관하는 누군가, 정체 모를 그 누군가 무슨 조화를 부렸기에 내 인생은 글쓰기로 빠져버렸나? 인간의 삶을 점지해주는 조물주가 있다면 멱살을 쥐고서라도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켠 나는 거듭 묻는다. 이게 과연 인간으로서 살아볼 만한 삶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