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필 편지
그는 왜 날 위해 칼을 휘둘렀을까. 세월의 뒤안길에 묻혔던 추달호를 생각하면 어김없이 의문 하나가 따라붙는다. 돌이켜보면 부스럼 같은 빚이었다. 한때 한낱 넝마주이가 객기를 부렸겠거니 했다. 더불어 부채감도 옅어졌고. 교수직도 추달호와 멀어지는 데 한몫했음을 숨길 수 없다. 대학이라는 보호막에 길든 삶에 넝마주이 추달호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라는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는 기억은 언젠가 인간을 움직이기 마련이다. 밑바닥 삶에 이골이 난 넝마주이일지라도 불이익을 당할 거 뻔히 알면서 섣불리 나서지는 않는 법. 무엇보다 추달호의 행동을 현장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나. 넝마주이 추달호가 어리바리한 햇병아리 기자 권소운을 대신해 규율부장을 응징했음을 말이다.
추달호는 살아있을까?
자필 편지를 받았으면서도 권소운은 어쩐지 그의 생존이 미심쩍었다. 넝마주이 출신이 살았을 팍팍한 삶을 막연히 미루어 짐작한 탓일까. 거의 삼십여 년 만이었다. 추달호가 소식을 전해온 게. 넝마주이 청년이, 머리가 반백에 이른 세월을 무지르고 연락해 왔다, 한물간 폐광촌에서. 어찌 그의 인생행로가 궁금하지 않겠나. 먼저 찾아 나섰어야 했다, 추달호를. 사람을 홀대한 대가치고는 뒤늦은 후회막급이었다.
‘그 사건’ 후유증으로 비사교적으로 변해서 당신을 돌아볼 짬을 못 냈다고 스스로 면죄부를 남발할 생각은 없었다. 그 사건은 신문기자 권소운의 인생을 비틀었지, 넝마주이 추달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추달호의 칼부림이 세월을 버텨낸 상흔이었음이 명백해진 터에 주저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이제라도 인간에 대해 염치없었음을 일깨워주었음을 곱다시 받아들이는 수밖에. 변명 같지만, 추달호를 완전히 잊고 산 건 아니었다.
넝마주이 합숙소에서 나가자마자 사건 수습에 정신이 없었고, 일단락짓자 자의 반 타의 반 쫓기듯 독일로 떠났다. 이른바 반강제 유학. 독일에서 학위 따느라 십여 년을 보냈다. 귀국해서 대학에 자리 잡을 즘엔 거리에서 넝마주이 보기가 힘들었다. 추달호가 이따금 생각났으나 어느 하늘 아래에서 잘 살겠거니 했다. 대학에 몸담은 뒤로는, 사회학을 전공한 처지임에도 추달호들에 대해선 관심을 안 두었다. 대학 교수직에 실려 시나브로 그를 잊어갔고.
11월 초, 추달호가 편지를 보내왔다. 탄광 생활사박물관 전용 봉투. 보낸 사람은 추성영. 탄광 생활사박물관도 생뚱맞지만, 발신인 이름 석 자도 낯설었다. 퇴직 교수 권소운은 탄광 생활사 쪽으로는 문외한이었다. 이런저런 학회 활동에 마지못해 발을 담갔어도, 석탄산업 어쩌고 하는 동네엔 얼씬한 적이 없었다. 잘못 배달했나 했다가도 받는 사람은 권소운이 틀림없었다.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고서도 잠시 어리둥절했다. 초등 저학년생이 연필로 삐뚤삐뚤 썼음직 한 편지는, ‘선생님의 가족사진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달랑 한 줄이었다.
이어 지렁이가 기어간 듯한 글자로 덧붙인 추달호, 왕코. 이게 뭔가? 이름만으로는 자신이 알던 넝마주이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다. 왕코를 음미하고서야, 아! 하고 권소운은 무릎을 쳤다. 넝마주이 추달호의 별명이 왕코였던가? 옳다! 왕코, 추달호! 비로소 괴발개발 쓴 한 줄짜리 편지에 숨은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흙먼지가 켜켜이 쌓인 점토판을 붓으로 털어내고 거기에 새긴 글자를 고생 끝에 읽어낸 듯, 어떤 벅찬 떨림이 온몸을 휘감았다. 재직 중에도 공적인 일에 얼굴 내밀기를 멀리한 습성이 퇴직하고 나서는 홀로 사는 데 익숙해졌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동료 교수 중에는 환경운동 따위 시민운동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권소운은 현실 참여엔 거리를 두었다. 그 사건에서 비롯한 일종의 반작용이랄까.
편지 한 장에 모처럼 심장에 사람이 들어앉은 감격을 누리다니. 빌어먹을, 그 가족사진을 여태 가지고 있을 건 뭔가. 이제 와 그걸 전해주겠다고?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가? 그 긴 세월을 닳고 닳은 흑백 사진 하나를 품어온 추달호라. 도대체 그 작자는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기에 그따위 허망한 짓거리로 사람 심사를 헝클어뜨리나. 그에게 까닭 모를 부아가 치미는 건 흑백 사진 한 장을 돌려주겠다는 우직한 미련퉁이여서만은 아니었다.
권소운은, 넝마주이 추달호를 더는 뿌리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추달호가, 그 옛날 넝마주이 왕코가, 대인 기피증을 고질병으로 달고 사는 은둔 인간 권소운을 불러낸 것이었다. 강원도 Y군 북면으로 말이다. 삼십여 년 세월을 어제인 듯 가뭇없이 날려버리고! 11월 16일, 날짜까지 못 박았다. 준엄한 명령이라기보다는, 권 형, 어여, 놀러 오쇼. 오랜만에 얼굴 봅시다!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부르는 듯 하는 데야, 권소운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편지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