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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비창소나타' - 격정과 타협 그리고 발버둥

이제야 듣는 클래식 19

by 곰탱구리


피아노 소나타 8번 다단조 작품번호 13. - 지독한 운명을 온몸으로 맞선 한 남자의 분노와 격정 그리고 극복을 위한 걸음.



베토벤의 초기 피아노 소나타로 제14번 ‘월광’, 제23번 ‘열정’과 더불어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로 꼽힌다. ‘비창’이라는 표제로 유명한데, 베토벤이 처음으로 직접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에 표제를 붙인 것이다.


이 곡은 작곡 동기나 시기를 알 수 없는데, 학자들은 1797년부터 1798년 사이에 작곡했거나 1798년부터 1799년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는 그가 빈에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며 피아노 소타나 작곡에 열중했던 때로, 그는 1795년부터 1799년 사이 1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완성했다. 그의 피아노 소나타에 붙은 표제들이 대부분 다른 사람에 의해 붙여진 데 반해 이 곡의 표제는 베토벤이 붙였다. 이렇듯 베토벤이 직접 표제를 정한 곡은 이 곡 외에 피아노 소나타 제26번 ‘고별’뿐이다. 악보는 1799년 가을 출판되었고, 정식 명칭은 〈비창적 대 소나타 Grade Sonate Pathetique〉이다. 이 곡은 빈에서 큰 인기를 모았고, 덕분에 베토벤이 피아노 작곡가로서의 위상도 높아지게 되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소나타가 베토벤의 생애 전반기를 그린 것이라고 전한다. 작곡가의 고독한 마음이 표현되어 있지만,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인내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의 작곡을 시작할 당시 베토벤은 이미 자신의 청각 장애의 최초 징후를 경험하고 있었다. 반면, 어떤 학자들은 베토벤이 "로미오와 줄리엣" 시대의 심경, 즉, 청춘의 애상감을 묘사한 것이라고 전한다. 이 곡이 그려내고 있는 것은 베토벤의 후년의 작품에 나타나는 심원(深遠)한 비극성과는 다른 차원의 애절함이며, 그러한 정감을 음악에 의해 전달하겠다는 분명한 의식이 확립되어 온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곡의 2악장과 3악장은 매우 유명하다. 2악장은 특히 각종 대중가요에 많이 샘플링되었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70년대 올드팝송인 'Louise Turker - Midnight Blue'으로 아직도 50~60대 팝송을 좋아하던 분들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이다. 3악장의 경우는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곡명으로 90년대부터 유행한 오락실 펌프게임 덕분에 유명해졌다. 가장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하던 스테이지 중에 하나여서 많은 청소년들이 도전을 하며 들었던 노래이다.


이 곡은 전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악장 그라베-알레그로 디 몰토 에 콘 브리오(Grave - Allegro di molto e con brio)는 서주가 있는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그라베’라는 지시가 말해주듯 느리고 장엄한 10마디의 서주부가 인상적인데, 이 선율은 순환 동기가 되어 곡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주부부터는 템포가 바뀌면서 현란하고 격렬하게 전개되며 전조 되고, 코다에서는 강렬하게 제1주제를 한 번 더 연주한 뒤 끝이 난다.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Adagio Cantabile)는 3부 형식의 악장이다. 눈부시게 우아한 멜로디로 인해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광고에 사용되었다.

3악장 론도: 알레그로 (Rondo: Allegro)는 C 단조의 전형적인 론도형식의 악장이다. 빠른 템포로 경쾌하게 전개되지만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쾅.......따단 딴따 따"

피아노를 주먹으로 내려치는 듯 한 강력한 음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왜?'라는 물음을 세상에, 운명에, 하늘에 그리고 자신에게 따지 듯이 묻는다. 분노에 찬 음성으로 건반을 부실 듯이 내려치며 질문한다 첫 소절에서는 "왜? 이런 게..." 두 번째 소절에서는 "대체 왜 이런 게...."라는 말로 울부짖고 있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아니야. 아닐 거야.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야" 그렇게 시작된 부정은 1분 43초간 계속된다. 그러다 터져 나오는 분노가 격정적인 건반의 두드림으로 표출되어 이어진다.


폭풍이 몰아치는 깊은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들어있는 숲 속을 한 남자가 뛰어간다. 가슴을 가득 채운 불덩어리들로 내리는 빗물에도 타오르는 가슴은 결코 차갑게 식지 않는다. 심장을 대신해서 들어있는 차돌보다 단단한 분노가 겹겹이 바위돌처럼 쌓여가며 커진다. 원망할 누군가를 아니 무엇인가를 찾아 미친 듯이 뛰어간다. 어디로 가는지도 어디에 도착할지도 모른 채로.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폐가 더 이상의 산소 순환을 거부하며 심장 옆에 들어 눕는다. 얼굴과 몸을 매섭게 때리는 나뭇잎들이 채찍처럼 매섭게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아프지 않다. 느껴지지 않는다. 격앙과 폭발로 일관된 분노는 결코 꺼지지 않는 지옥의 화염처럼 온 숲을 불 태울 듯이 퍼져 나간다. 폐가 으스러진 이후에야 다리가 휘청거리며 쓰러져 더 이상의 폭주를 포기한다. 깊은 밤, 불 빛 한점 없는 숲 속, 누구도 올리 없는 폭풍 속, 그 참담함 속에 스스로를 버려야 하는 혹독한 운명을 맞이한 한 남자.


그는 쓰러져 울고 또 울었다. 울음으로는 부족하여 주변의 땅을 마구 파헤치고 나무들을 주먹으로 두들기고 가지들을 마구 꺾고 자르고 들꽃들을 발로 짓밟으며... 세상이, 운명이, 하늘이 아니 그 누구라도 아니라고, 너에게 주어진 운명은 그것이 아니라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모든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침묵을 지키며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에게 허용된 모든 시간이 하릴없이 소멸되어 가도 모든 세상은, 운명은, 하늘은 그리고 사람들은 침묵 속에 그를 내팽겨 쳐 놓았다.


운명을 향해 목 터지게 내지르는 절규는 밤의 어둠 속으로 묻혀버리고 남자는 피가 흐르는 주먹으로 연신 침묵하고 있는 나무를 때리며 울었다. 돌에 부딪쳐 흐르는 발가락의 피가 빗물에 조금씩 희석되고 눈에 눈물 대신 빗물이 섞이어 흐른다 그제야 남자는 대지 위에 자신의 몸을 눕히고 가뿐 숨을 몰아 쉰다. 주먹은 서서히 펴지고 물에 흠뻑 젖은 수풀 위로 떨어져 내린다.


한참을 누웠다 일어나 앉자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작은 오두막 집이 한 채가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지치고 푹 젖은 몸을 일으켜 그곳으로 걸어간다. 오두막 집의 중앙에 있는 벽난로에서는 모닥불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고, 그 앞에는 너무도 편안해 보이는 흔들의자가 마치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조용히 앞뒤로 움직이고 있다. 남자는 젖은 옷을 벗고 흔들의자에 몸을 온전히 맡긴다. 탁자 위에 놓인 달콤한 와인 한잔을 손에 쥐고 가볍게 들어마신다. 휘몰아치던 바람은 작은 오두막을 둘러싸고 포위를 한 채 놓아주지 않는다. 창문에 부딪치는 폭풍과 빗방울은 여전히 매섭지만 흔들의자에 앉은 남자는 자신만의 평안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운명과 타협한다. 아니 이해해 보려고 한다. 지독하게 아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위로해 본다. 자신을 위로하고 따스하게 보듬어 가까스로 작은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잠시의 평온한 잠 속에서 깨어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현실에 남자는 우울함과 불안감이 빠르게 찾아온다. 폭우와 폭풍을 막아주던 작은 오두막 집은 사라지고 따스한 모닥불 마저 흔적마저 없어지고 군데군데 핏자국 묻어있는 빈 주먹만이 존재한다. 남자는 지친 몸을 일으켜 다시 숲 속 어둠의 한가운데에 두 발을 딛고 선다. 그리고는 다시 뛰기 시작한다. 가슴에는 더 이상 분노의 덩어리들 만이 뭉쳐있지 않다. 이 전과 같이 빠르게 달려가지만 뛰다 쉬다를 반복하며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슬프고 우울한 마음은 의식의 밑바닥에 가득 차 있지만 마주한 현실 앞에서 남자는 절망과 분노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어두운 숲 속을 떠나 자신이 마주쳐야 할 현실을 똑바로 보기 위해 한발 한발,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진한다.


그러나 끝내 이 지독하고 고통스러운 운명에 대하여 자신만의 결론을 내지 못하고 급격히 마감한다. 마치 피하듯이 도망치 듯이... 오랜 시간의 고민, 혼란과 무너짐, 다시 일어섬의 모든 과정을 다가 올 미래에 미루고 단지 지금은 모두 잊고 눈앞에 있는 현재 만을 마주하겠다는 듯이 급격하게 맺어 버린다. 긴 시간의 번민, 고통스러운 시간, 승리와 패배의 반복, 깊은 고뇌와 번뇌 속의 애처로운 몸부림이 남자의 길고 깊은 시공 속에서 파괴와 생성 그리고 회귀를 번복하고 반복된다. 마침내 8~9년이라는 남자만의 영역에서 흘러가는 시간이 지나고 그는 자신의 새로운 교향곡을 통하여 드디어 얻어낸 결심을 당당하게 답한다. 그 지랄 맞은 운명에게 빅엿을 날리며.

[참조 : 운명의 준엄 베토벤 교향곡 5번 - 운명을 이기는 당당함]


인간이 죽음 혹은 불치병에 걸리게 되면 그것을 수용하기까지 5단계의 감정적 변화를 거친다고 한다.

1단계 : 부정과 고립, 2단계 : 분노, 3단계 : 타협, 4단계 : 우울, 5단계 : 수용

20세 후반, 음악가 베토벤에게 찾아온 청각의 상실은 그에게는 죽음 혹은 불치병과도 같은 저주받은 운명이라 생각되었을 것이다. 베토벤은 이 곡 비창 -정확한 해석은 '비참' 혹은 '비장'이라고 합니다-을 통해 자신의 4단계까지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그의 마지막 감정인 5단계의 '수용'은 교향곡 5번 '운명'에서 명쾌하고 당당하게 포효하고 있다. 이 곡은 "비참하고 지독한 운명이 앞을 가로막고 내게로 다가올 때 너는 너의 5단계를 어떤 것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다.


모두 행복하자. 그러나 혹시라도 불행이 힘들게 하더라도, 이 곡을 들으며 나보다 더 불행하였던 한 남자가 자신의 불우한 운명에 어떻게 답을 하였는지를 생각해 보고 나는 어떤 답을 만들어 갈 것 인지를 고민해 보자.

나는 이 곡이 모든 사람의 위로와 평안이 되기를 기도한다.



https://youtu.be/2DkE_fe0jMA 피아노 소나타 8번 다단조 작품번호 13 [출처 : 유튜브]


https://youtu.be/Un-_yx5M4U8 'Louise Turker - Midnight Blue [출처 : 유튜브], 젊은 시절 이문세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가끔 들려주었던 추억의 팝송.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던 팝송이라 한번 들어 보시라고 링크 걸었습니다.


https://youtu.be/nlzZ9jhzSU0?si=jMI00HXe8JLKkOmd '베토벤 바이러스 일렉트릭기타 버전' [출처 : 유튜브] 비창 소나타 3악장을 단순히 리메이크한 것이 아닌, 주 선율 앞부분만을 따온 후 그 외는 작곡가 오상준(SJ)의 창작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일렉트릭 기타 버전이 제일 신명 나고 밝은 것 같아서 가져와 봤습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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