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들어보는 클래식 20
초기 에릭 사티를 대표하는 작품인 동시에 그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1888년에 작곡된 곡으로 신비로우면서도 독창적이며, 깊이가 있다. 프랑스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20세기 뉴에이지 음악의 탄생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곡은 플로베르의 《살람보》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낭만주의 시인 파트리스 콩 떼미뉘(J. P. Contamine de Latour)의 시 〈고대인 Les Antiques(The Ancients)〉에서도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다. 당시 콩 떼미뉘는 사티가 연주하는 ‘검은 고양이’의 단골이었는데, 두 사람은 금세 친해져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교류하는 중 비슷한 기간에 [짐노페디]와 [고대인]이 만들어졌는데, 사티는 콩 떼미뉘의 [고대인]에 나오는 ‘짐노페디아와 사라방드를 뒤섞어 춤추네[Mêlaient leur sarabande à la gymnopédie]’라는 구절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어 곡을 작곡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티는 1888년 2월 본격적으로 작곡에 착수해 두 달만인 4월에 완성했다. 출판은 그 해 8월 이루어졌다. 이후 이 곡은 사티와 절친했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에 의해 1번, 3번이, 작곡가이며 음악학자인 롤랑 마뉘엘(Roland-Manuel)에 의해 2번이 관현악으로 편곡되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릭 사티, 짐노페디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제목인 '짐노페디'는 영어 짐노페디아(Gymnopaedia)의 프랑스식 표기다. 짐노페디아는 고대 스파르타인들이 알몸으로 전쟁을 연상시키는 춤을 추며 스파르타의 후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던 축제를 뜻하며, gymnos는 고대 그리스어로 '알몸', paedia는 '청춘, 젊은이'를 의미한다. 의역하면 '맨몸의 청춘'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곡은 깊은 성찰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듣는 이로 하여금 평온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사티는 이곡을 통하여 전통적인 조화와 리듬을 탈피하려고 하였으며, 간결하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와 조화로운 화음을 사용해 독특한 분위기를 창조하였다. 각각의 '짐노페디'는 주제의 반복과 미묘한 변형을 통해 진행된다. 이 반복은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적 여정에 몰입하게 만들며, 각 반복마다의 변화로 새로운 차원을 추가해나가고 있다.
이 곡은 총 3개로 되어 있다.
1번: 느리고 비통하게(Lent et douloureux), D장조/D단조
2번: 느리고 슬프게(Lent et triste), C장조
3번: 느리고 장중하게(Lent et grave), A단조
1번 곡은 라장조의 느리고 평화로운 멜로디로 시작해서 D단조로 바뀌어 조금 불안정한 분위기로 끝을 맺는다. 얼핏 듣기로는 힐링음악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람에 따라 슬프거나 무섭다는 평가 또한 존재한다. 원한다면 우울을 들을 수 있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곡이라고 표현된다. 화성적으로 단조 구조가 가지는 분위기를 장조 스케일로 변환하면서 곡의 전체적인 느낌은 흐리지만, 마치 표현하자면 "흐릿한 풍경화"와 같은, 마크 로스코 풍의 감정적 틀을 보여주는 곡이다. 2번 곡은 1번보다는 보다 밝은 분위기의 C다장조 곡이다. 3번 곡은 위의 1, 2번보다 더욱 느리고 구슬픈 A단조의 곡으로, 1번과는 다르게 평화롭다거나 밝다는 평가가 전혀 없다.
짐노페디 2, 3번도 인지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1번의 인기가 넘사벽으로 매우 높은 탓에 대중매체에서의 '짐노페디'는 대부분 1번을 의미한다. 2024 파리 올림픽의 개회식에서 이 곡을 사용했고 2014년도 시몬스 광고에 쓰였다. 사람들이 이때 처음 짐노페디를 들어보거나 접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2006년에 아이파크 아파트 광고에도 삽입된 적도 있었다.
이 곡은 설명한 바와 같이 상당히 몽환적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 혹은 듣는 상태에 따라 연주 자체도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는 곡이다. 어떻게 들으면 정말 피아노를 치기 싫어하는 게으른 연주자가 마지못해 툭툭 한음씩 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만사에 지친 월급제 피아노 연주자가 지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억지로 이어가는 연주로 느껴지기도 한다. 비 오는 날, 흐리고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들어보면 핵전쟁 이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거리에 홀로 서있는 쓸쓸한 바람소리와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맑은 햇볕 속에서 베개를 깔고 누워 가만히 들어보면 무채색의 시간과 공간이 멈춘 안락한 시공 속에 잠들어 가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11살 때였던 것 같다. 그 당시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고 있던 때이다. 우리 집은 블록구조의 2층 집이었다. 1층은 상가로 만들어 세를 주었고 2층은 반으로 나누어 아버지께서 운영하는 사진관과 우리의 생활을 위한 거주공간으로 양분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거주공간의 구조는 방 2개에 거실 1, 주방과 화장실이 각각 1개씩 있는 일반적인 형태의 주택이었다. 거실은 정남향으로 만들어져 햇볕이 매우 잘 들어왔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전방에 있었고 목재로 된 미닫이 문이 이중으로 설치된 공간이었다.
아마도 10월 초 정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교에서 신나게 뛰놀고 -당시에는 사교육이 거의 없었고 지금처럼 공부하라는 압력이 거의 없었을 때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간식을 배 터지게 먹고 나서 힘들어서 소파에 누워있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햇볕이 쏟아지는 미닫이 문 쪽에 앉아서 사진 자르는 일을 하고 계셨다. 나에게 관심이 쏠리지 않아서였을까? 일하느라 바쁘신 어머니에게로 다가가서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어머니는 일하는데 방해된다는 핑계로, 내 짧은 머리카락 때문에 간지럽다는 핑계로 몇 번이고 내 머리를 밀어내셨지만 나는 집요하게 허벅지를 붙들고 늘어졌다. 따스하게 내려 쪼이는 햇볕, 눈을 가득 메운 파아란 하늘, 푸르름에 미끄러지 듯 흘러 다니는 티끌 하나 없는 하얀 구름, 태양 빛의 뜨거움을 적당히 중화시켜 주는 싱그러운 바람, 노느라 지친 몸, 실컷 먹고 난 후의 식곤증 그리고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엄마의 향기로운 내음새. 세상의 어떤 베개보다 편안한 엄마의 허벅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나는 서서히 까무룩 잠이 들어가고 있었고 너무도 행복한 꿈 속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솔직히 그때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특히 그날이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다는 느낌이 진하게 남아있어서 이다. 그 순간만큼은 신께서 나의 지친 육체에 휴식을 주시기 위하여 가장 적당하고, 가장 적절한 모든 것을 한 곳에 모아 주신 것 같다고 할까?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잠이 깨었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20분 정도의 길지 않은 숙면이었음에도 나의 몸은 세상의 모든 양분을 원하는 만큼 잔뜩 흡수한 새 생명체 같이 상쾌하고 신선했다. 새로이 태어난 느낌이랄까? 마치 가장 편안한 양수 속 들어있다 나온 느낌이랄까? 불면증에 고생하는 환자의 경우 그런 잠을 한 번이라도 잘 수 있다면 천만금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즘 가끔 명상을 한다. 자기 전에 침대에 앉아 음악을 틀어놓고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무상무념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이때 주로 듣는 곡이 이 '짐노페디'이다. 이 곡은 온통 회색 무채색으로 빚어진 세상 속으로 나를 안내한다. 눈부시게 하얗지 않다. 따스한 겨자색도 아니다. 부드러운 아이보리 색도 아니다. 시원한 슈사드 색도 아니다. 편한 듯, 불편한 듯, 따스한 듯, 차가운 듯, 모든 것을 평등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안개와 같은 옅은 회색의 세상으로 걸어 들어간다. 몽환의 세계에는 모든 것이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
금은보화도 회색으로 물들고 화려한 명품 옷도 단일의 회색으로 물들어 버린다. 옅은 쓸쓸함이 온 세상에 회색으로 퍼져 있지만 따스한 온기와 위로로 내 온몸을 감싸 안아 준다. 회색의 물고기들이 날아다니고 회색의 강에는 회색의 새들이 헤엄치며 다닌다. 검은색의 우주는 회색의 멜로디로 색칠해져 그 자취를 점점 감춰져 가고 회색의 침대에서 회색의 이불을 덮고 회색의 잠을 잔다. 아름다운 꿈은 몽환적 기억으로 내 가슴에 깊이 새겨지고 포근한 내음이 물씬 풍기는 엄마의 다리에서 나는 잠을 깬다.
피곤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여.
생존에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내게 주시오
사티의 몽환적 세계에 그대를 초대하리다
안락한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는
회색빛 안락의 세계에 당신을 안내합니다.
https://youtu.be/NFzHN4m07VY?si=Wiy-En3QXbSLz2Gk 에릭사티 3개의 짐노페디 [출처 :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