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과제와 안 되는 과제

<19년 살아본 보고서> 8.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 8

by 문현호

'영재고'라고도 불리는 경기과학고등학교에서 2학년이 된 저는 낮은 성적 문제와 애착 불안 문제를 동시에 마주했습니다. 자존감은 무너지고, 마음의 안식처는 무너졌으며,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8장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에서는 제가 그 우울증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어떻게 자존감과 행동력을 되찾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저는 퀵 윈 과제를 이용했습니다. 퀵 윈 과제는 반드시 빠르게 성공하는 아주 작은 과제를 의미합니다. 이는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을 제공하며, 팀과 개인에게 자신감과 자존감을 빠르게 채워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용했던 퀵 윈 과제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되는 과제의 특징

저는 곧 몇 가지 작업과 퀵 윈 과제를 반복하며, “되는 과제”만의 특징을 세 가지 찾아내었습니다. 각각 가벼운 마음가짐, 목표 쪼개기, 그리고 기한과 감시자의 중요성이었어요.

먼저, 되는 과제는 마음가짐이 가벼워야 했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의미’, ‘처음부터 완벽해야 한다’ 같은 목표를 가진 것들은 제대로 도전조차 못 했고, 만들어지다 만 중간 산물만 남았어요. 하지만 일단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작은 목표들은 해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가장 큰 의미’를 어떤 일에 부여하고 나면, 오히려 다른 일들이 훨씬 빠르게 풀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처음 하는 일은 반드시 실패한다.” 이때 저는 처음엔 반드시 원하는 성과에 미치지 못한 채 실패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시도가 쌓이다 보면 다음과 그 다음 결과물은 훨씬 나아지고, 머지않은 시간에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도 곧 깨달았어요. 그러니 시작부터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 일, 완벽주의가 강하게 붙어버린 일은 절대 완성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조금 더 나아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대충’ 하고, 다음에는 ‘빨리’ 하며, 마지막에는 ‘잘’ 하면 된다는 거에요. 일단 처음부터 완벽하려 하지 말고 대충, 익숙해진 다음 빨리 결과를 내며, 그 결과를 완벽하게 다듬는 노력은 맨 마지막에 하면 된다는 거죠. 항상 80%만 완벽하라, 모든 작품은 수정을 포기할 때 완성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되는 과제는 목표를 쪼갤 수 있어야 했습니다. 커다란 목표는 ‘한 번에’ 완벽한 결과를 낼 수 없어요. 그리고 작업을 한 번에 5시간 이상 이어갔을 때 그 성과가 느껴지지 않으면 의욕은 감소합니다. 그러니 그보다 짧은 시간에 성과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목표가 쪼개져 있어야 합니다.

영상 제작이 좋은 예입니다. 영상 제작은 시퀀스를 나눠서 편집하고, 그 세부 구성 요소가 비교적 직관적이에요. 그래서 일을 더 작게 쪼개기 쉬웠고, 현재 완성도나 남은 시간을 예상하기도 쉬웠죠. 게다가 중간중간에 결과를 제대로 볼 수가 있으니 작은 성취감을 매 순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업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었고, 과제를 더 쉽게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작곡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작곡은 초심자에게는 상당히 모호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시퀀스나 작업의 진행도를 나누기가 어려웠어요. 원하는 건 있지만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거기에 완벽주의까지 붙어버리니 중간 단계에서 만족이나 성취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커다란 과제를 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목표를 쪼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 목표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전반적인 계획이 일단 잡혀있어야 해요. 작업에 대한 최소한의 숙련도와 이해도 역시 필요합니다. 오히려 그 숙련도를 일단 익히기 위해서 수업이나 강의를 따라가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거에요. 확실한 것은 어떻게든 잘 쪼개지 못하는 목표는 절대 완성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작은 성취감을 반복해서 느끼기 쉬운 구조로 만들어진 가상의 프로그램이 바로 ‘게임’인 것 같습니다. 장르나 연령, 자유도에 상관 없이 게임은 무조건 일이 작은 구조로 쪼개져 있거나 쪼개기 쉽게 수치화되어있고, 결과가 시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빠른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요.


세 번째로, 되는 과제는 기한과 감시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기한이 존재하는 일은 기한이 없는 일에 비해 더 빠르게 처리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보통은 누군가의 감시에 의해 기한이 주어지는 경우가 더 잘 먹혔습니다. 혼자 하는 일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잘 되지 않았어요. 우습게도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스스로와의 약속보다 더 잘 지켜지는 것 같았습니다.

기한이 없는 과제는, 그게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반드시 기한이 있는 과제에 우선순위가 밀리게 됩니다. 혼자 주도하는 과제 역시 마찬가지로 반드시 다른 감시자가 있는 과제에 우선순위가 밀리고요. 따라서 과제에 기한을 주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여 감시자를 만든다면, 그 과제의 우선순위가 올라가고 더 먼저 해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상 제작에는 기한과 감시자가 모두 있었습니다. 제가 이후에 해낸 퀵 윈 과제들에도 대부분 기한이나 감시자가 있었고요. 반면 작곡 같은 ‘개인적인 프로젝트’에는 적절한 기한이나 감시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작곡보다는 영상 제작 과제의 우선순위가 높았어요. 작곡은 혼자 심심할 때나 열어보는, 의무감만 남은 과제가 되었죠. 만약 작곡이라는 과제에 제가 기한만 정해두었더라도 이야기는 크게 달라졌을 겁니다.

실제로 제 친구들 중에도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는’ 친구들이 있어요. 말을 들어보면 ‘그들과 함께 정한 기한’은 혼자 정한 것보다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지키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그냥 친구들이 좋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런 친구들은 보통 단기간에 엄청난 성과를 내더군요. 그런 스터디 그룹은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책을 쓰는 일도 첫 3년은 혼자 진행했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점차 한계점이 명확하게 드러났어요. 4년차 되던 해, 저는 이 책을 쓰는 일과 기한을 공개하여 감시자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는 간단히 말하자면 긍정적이었어요.


물론 과제의 기한 관리는 어렵습니다. 특히 기한이 있는 다른 과제가 많으면 더더욱 어려워져요. 고등학생 신분이었던 제게는 이후 학교의 수많은 과제가 쏟아졌고, 저는 점차 제 목표에 집중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대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더군요. 어쩌면 정말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과제들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규칙이 있겠지만, 당장 제가 ‘되는 과제’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이 세 가지였습니다. 확실한 것은 완벽할 필요 없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목표를 최대한 쪼개며 성취감으르 얻고, 기한과 감시자를 둔다면 과제의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버거워보였던 과제도 쉽게 해낼 수 있고, 그 과정과 결과에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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