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는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 속으로 불려 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에 돌려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저무는 해가 마지막 노을에 반짝이던 물비늘을 걷어가면 바다는 캄캄하게 어두워갔고, 밀물로 달려들어 해안 단애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어둠 속에서 뒤채었다. 시선은 어둠의 절벽 앞에서 꺾여지고, 목축으로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 너머 캄캄한 물마루 쪽 바다로부터 산더미 같은 총포와 창검으로 무장한 적의 함대는 또다시 날개를 펼치고 몰려온다. 나는 적의 적의(敵意)의 근거를 알 수 없었고 적 또한 내 적의의 떨림과 깊이를 알 수 없을 것이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적의가 바다 가득히 팽팽했으나 지금 나에게는 적의만 있고 함대는 없다.
나는 정유년 4월 초하룻날 서울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내가 받은 문초의 내용은 무의미했다. 위관들의 심문은 결국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헛것을 쫓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언어가 가엾었다. 그들은 헛것을 정밀하게 짜 맞추어 충(忠)과 의(義)의 구조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바다의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았다. 형틀에 묶여서 나는 허깨비를 마주 대하고 있었다. 내 몸을 어깨는 헛것들의 매는 뼈가 깨어지듯이 아프고 깊었다. 나는 헛것의 무내용함과 눈앞에 절벽을 몰아세우는 매의 고통 사이에서 여러 번 실신했다. 나는 출옥 직후 남대문 밖 여염에 머물렀다. 영의전 대사헌 판부사들이 나를 위문하는 종을 보내왔다. 내가 중죄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 종들은 다만 얼굴을 보이고 돌아갔다. 이 세상에 위로란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장독(杖毒)으로 쑤시는 허리를 시골 아전들의 행랑방 구들에 지져가며 남쪽으로 내려와 한 달 만에 순천 권률 도원수부에 당도했다. 내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시작이었다.
한산, 거제, 고성 쪽에서 불어오는 동풍에는 꽃핀 숲의 향기 속에 인육이 썩어가는 고린내가 스며 있었다. 축축한 숲의 향기를 실은 해풍의 끝자락에서 송장 썩는 고린내가 피어올랐고, 고린내가 밀려가는 바람의 꼬리에 포개져서 섬의 꽃향기가 실려왔다. 경상 해안은 목이 잘리거나 코가 잘린 시체로 뒤덮였다.
위 본문에서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원문과 다르게 표기된 부분입니다.(책 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기한 부분이 있다고는 합니다.)....사실은 저도 잘 이해를 못한 부분입니다.
박모...박무(옅은 안개), 목축...목측, 어깨는...억매는
김훈의 문장에서 배운 것
김훈의 문장은 느리지만 단단하다. 꽃과 섬, 바다와 사슬 같은 단어들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거대한 문장으로 호흡한다. 짧은 문장을 연결하는 대신, 긴 문장 속에서 사유의 흐름을 견디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 힘은 글을 읽는 이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그의 문체는 ‘묘사’보다 ‘인식’에 가깝다. 풍경을 그리지만, 그것은 늘 인간의 내면과 닮아 있다. 바다와 섬은 고립된 인간의 자화상이고, 꽃의 향기 속에는 이미 피비린내가 섞여 있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고통과 공존한다는 사실을, 그는 단 한 문장으로 말한다.
느낀 점
필사를 하면서 처음엔 문장이 너무 길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 외우지 못하고 짧게 끊어서 써야 했다. 그러나 끝까지 써 내려가다 보니 그 길이는 생각의 리듬과 닮아 있었다. 글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숨을 참듯 써야 하는 문장, 멈추면 의미가 끊어지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하나의 호흡이 완성된다. 김훈의 문장은 그래서 호흡의 문장이다.
그의 글에서 나는 ‘전쟁’을 본 게 아니라 인간의 절망 속에서도 끝내 놓을 수 없는 존엄의 감각을 느꼈다. 그는 싸우는 장군이 아니라, 쓰러져 가는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냉정함 대신 깊은 연민이 있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