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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Nov 09. 2023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나는 다르게 죽기를 결심하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죽음을 배우다 ; 리디아 더그데일 지음, 김한슬기 옮김, 현대지성, 2021.>




죽음을 탐구하는 나만의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죽음과 관련된 책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계속 놀라는 중이다. 살아가는 것도 준비하고 헤쳐나갈 일이 얼마나 많은데, 죽음을 준비한다는 자체가 생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죽는 법을 다루는 책이 이렇게 많은 것은, 잘 살기조차 버거운 우리에게 좀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직접 다루는 책들은 저자가 주로 의료계 전문가다.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가장 많이 겪는 직업군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의료진이 쓴 책들은 문장의 결은 다르지만 대체로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고, 타인의 죽음을 통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고민하는 에세이가 대부분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똑같은 죽음은 없다. 그 다양하고 극적인 상황에 대한 관점은 저자마다 다르지만,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닮은 점도 발견하고 있다. 그것들이 모이면 삶의 끝, 죽음을 준비하는 나도 어느 정도의 통찰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기대도 생긴다. 


새삼스럽게 그간 읽은 죽음 관련 책들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그런 욕심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이 작업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엄마의 죽음이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을 절대적인 사건인 만큼, 엄마의 마지막이 나에게 주는 가르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존재 자체로 딸에게 가르침을 준 것을 안다면, 엄마도 사후 세계 어디선가 반가워하지 않을까. 그것을 단순한 나만의 언어로 다듬어 두었다가 죽을 때까지 마음에 새긴다면, 이다음 내 순서에 이르렀을 때 조금 덜 아쉽지 않을까. 엄마가 나에게 남기고 간 숙제 같은 기분으로 잘 죽기 위해 잘 사는 법을 찾는 중이다.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가장 편안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고통이나 후회 없이 잠자듯 눈을 감는 마지막을 바란다. 낯선 의료진이 수시로 드나들며 온갖 수치들을 기록해 가고, 주렁주렁 링거줄을 바늘 하나로 내 몸과 연결하여 아픈 몸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병원에서

두려움에 떨며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당사자뿐 아니라 남겨진 가족에게도 흔적을 남긴다. 그런 점에서 의료진이 관찰한 삶의 끝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힘들게 죽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노화든 질병이든 건강이 나빠지면 병원을 찾는다. 병원이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치료를 포기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언제인가가 문제가 된다. 저자는 적극적인 치료가 도움이 될지 쇠약해진 몸을 더 빨리 악화시키는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질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치료가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인 저자는 하버드 의과대학 매사추세츠 병원 소속 의사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부적절한 연명 치료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이야기한다. 전 세계적으로 사망률이 가장 높고, 엄청난 고통을 유발하며 대부분의 환자는 진단 후 1년 내에 사망한다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예후가 나쁜 이 병에 걸린 환자를 폐암 표준 치료 그룹과 표준 치료와 조기 완화 치료를 병행한 그룹으로 나누어 치료 효과를 비교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조기 완화 치료 그룹에 속한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기간이 표준 그룹에 비해 두 달이나 길었다고 한다. 조기 완화 치료 그룹은 '암 치료를 받는 동안 죽음을 준비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p.233)' 했기 때문에 공격적인 치료를 줄였다고 한다. 공격적인 치료가 암세포가 아니라 살아있는 세포까지 공격하는 아이러니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연구다.


비소세포 폐암 중 선암 4기. 엄마의 병명이었다. 갈비뼈에 약간의 전이가 발견되어 메이저 병원에서도 수술이 불가하다고 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엄마는 체력과 감정의 기복 속에서도 꾸준히 걷고 마음을 다잡아 4기 진단을 받고도 2년 반을 더 살았다. 치료하는 의사조차 고통스러운 병이라 하니 엄마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감히 짐작조차 못할 고통과 두려움이다.


뇌전이로 항암을 중단한 지 8개월, 뇌부종을 치료하기 위한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으로 엄마는 얼굴이 붓고 급성 당뇨가 왔다. 엄마 몸이 더 이상 화학성분으로 망가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호스피스에서 마지막 거친 숨을 차마 볼 수 없어 모르핀을 두 번 투여했다. 그것이 엄마를 편안하게 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항암을 중단하고 상태가 심각해지기 전까지 5~6개월 동안 엄마는 비교적 평온했다. 약물이 주는 치료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컸기에 항암을 중단한 그 시간의 몸의 평화가 참으로 고마웠다. 완치하겠다는 헛된 희망은 없었으나 항암 치료의 부작용 없는 삶은 조금 더 이어가길 바랐다. 병이 깊어갈지도 모를 두려움은 있을지언정 항암 치료의 그늘에서 벗어난 엄마는 훨씬 더 편안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나고 보니 과잉 진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엄마를 위해 잘한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누구도 피해 가거나 재촉할 수도 없고 언젠가 마주하게 될 죽음 역시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제대로 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옳다. 준비 없이 허둥대다가, 병에 좋다는 약이나 음식을 이것저것 먹어대다가, 정작 남은 시간을 의미 있는 일에 쓰지 못할 수도 있다. 준비가 없었기에 더 당혹스럽고 두렵다.


우리는 안다. 나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음을,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살면서 거의 유일하게 준비하지 않는 것이 죽음인 것 같다.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갓생을 살면서도, 겪을 것이 너무나 분명한 죽음은 아무도 준비하지 않는다. 재산이 많다면 사후 분쟁을 없애려고 유언장이라도 써 놓겠지만, 물려줄 재산도 별로 없으니 늙고 병들어 거동조차 힘들어지면 겨우 영정사진이나 신경을 쓴다.


나는 다르게 죽어야겠다는 이상한 결심이 생겼다.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고, 내 몸을 혹사시키지도 않으면서 잘 죽는 방법을 마련해 놓기 위해 죽음을 더 파야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평생에 걸쳐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곧 죽는 순간에 후회 없는 사는 법이라는 개똥철학이 또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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