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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Nov 10. 2023

<그렇게 죽지 않는다>

죽음은 생각 그 이상이다

<무엇을 생각하든, 생각과는 다른 당신의 이야기 ; 홍영아 지음, 도서출판 어떤책, 2022>



유능한 방송작가답게 저자의 화려한 언변, 아니 필력으로 나를 사로잡은 책이다. 죽음을 이렇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 고맙다.


죽음에 관해 천착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다. 엄마를 보낸 상실감인지, 어차피 죽을 인생, 잘 죽어서 남겨진 내 아이들이 엄마를 떠나보낼 때 덜 힘들기를 바라서인지, 그도 아니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 막연히 겁먹고 사느니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이유가 됐든 엄마의 죽음이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하다. 언제일지 모를 내 죽음이 기정사실이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죽음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무식하면 용감할 수도 있지만, 무지하면 또한 두렵기도 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다. 오랜 기간 육아를 하다 보니, 저녁 뉴스나 드라마를 할 때는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어쩌다 아이들이 일찍 잠들기라도 하는 날은 말 그대로 자유부인이 된다. 돌봄에 지쳐 일부러 바보가 되고 싶은 느낌에 멍하니 소파에 앉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린다.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 참 많다. 건강보조식품 정보인지 광고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종편 채널을 제외하고도 건강에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되는 정보를 알리며 질병과 죽음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많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병을 앓다가 극복한 이야기는 의사의 인터뷰를 근거로 희망의 메시지가 된다. 무심히 리모컨을 눌러대던 내가 그것을 잠시라도 눈여겨보게 된 건 엄마가 아프고 나서부터다. 건강 프로그램의 대다수는 그 무섭다는 '암'이 단골 소재였다. 암 환자의 보호자로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질적인 도움이 된 것은 없었다. 같은 질병을 앓아도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고 효과가 있는 약도 다르다. 암을 극복했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그림 좋은 남의 떡이었고, 좋아지는 듯했다가 다시 나빠지며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언젠가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을 무겁게 했다.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예방적 생활 수칙은 대부분 엄마가 평소에 실천하던 것들이었으므로 엄마를 돌보던 내내 안타까움과 억울함은 커져만 갔다. 복불복, 그것이 암에 걸리는 확률을 설명하기에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런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다큐 방송작가가 일종의 반성 같은 자각으로 작정하고 주변의 리얼한 이야기들을 취재하고 가감 없이, 무게 잡지 않고, 수다 떨듯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결정해야 하는 숱한 고민들, 부작용이 심한 항암제와 의사에 대한 신뢰의 문제, 희망을 놓는다는 죄책감, 호스피스를 알아보는 자식의 처절함, 그리고 죽은 뒤의 장례 과정에서 겪는 세세하고 미묘한 마음들을 어찌 그리 솔직하게 쏟아내는지 과연 유능한 밥벌이 작가는 다르구나 싶었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과 생각을, 부모의 죽음을 겪은 나는 쓰지 못하고 아직 겪지 않은 그녀는 썼다. 슬픔이 아니었다면 작가의 재능이 부러워 심란했을 것이다.


삶은 드라마가 아니다. 극적 요소가 부족해서이기도 하고, 더 극적이어서이기도 하다. 세상의 숱한 죽음에는 죽는 자에게나 그 가족에게나 나름의 사연과 애환이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사실적 죽음의 사례들을 읽으면서 새삼 우리 엄마는 정말, 참말로 복 받은 임종을 맞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죽기 전에도 죽을만치 힘들었을지도 모를 엄마 입장에서 생각한 것이 아니다. 마음은 아프고 힘들어도 죽어가는 엄마 옆에서도 허기를 느끼던, 지켜보기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나만의 생각이다. 


간 사람은 말이 없고, 산 사람의 해몽이 살아갈 힘이 된다. 엄마는 치료와 검사를 위한 입원을 제외하곤 암을 치료하는 내내 통증으로 입원했던 적이 없어서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이 많았다. 우리도 마지막까지 항암제를 써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 대신 일상의 평온을 택했다. 통증도 거의 없어 보였던 엄마가 2주 정도의 시간을 거의 잠만 자다가 깨끗하고 정갈한 몸으로 가신 것도, 멀리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자식들 모두 만나고 가신 것도 지나고 보니 고마운 일이다. 그런 생각들이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고 일상을 살게 한다.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를 살핀 다큐를 보는 것 같은 책에서 죽음은 그리 쉽게 빨리 오지 않음을 본다. 병원의 의료 수가를 높이는 의미 없는 연명치료나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아름다운 마지막을 꿈꾸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그렇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생각보다 이른, 생각보다 느린, 생각과 다른, 생각만큼 모르는, 생각해 보지 못한, 생각은 참'.

각 장마다 붙은 제목들이 인상적이다. 죽음은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태어난 것이 기적인 것처럼, 

존재한다는 것이 축복인 것처럼, 온 우주에 하나뿐인 나만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죽음을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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