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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Nov 12. 2023

<죽음이 품격을 입다>

내가 기획하고 연출하는 내 장례식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 송길원 지음, 하온, 2022.>



새로운 장례문화를 소개하는 책이다. 돌잔치 패키지에 포함된 포토테이블처럼,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메모리얼 테이블을 꾸미고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작은 장례식. 멋지다.


사회자가 등장하고 각종 이벤트를 벌이던 대규모 돌잔치가 양가 직계가족들만의 조촐한 식사와 돌잡이 상차림으로 작아졌다. 나 역시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불편한 옷을 입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회자가 시키는, 내키지 않는 퍼포먼스를 하는 돌잔치가 싫어 두 아이 모두 첫 생일을 가족들만의 작은 잔치로 치렀다. 


하객 수가 사회적 체면인 양 성대하게 치러지던 결혼식은 점차 자신이 기획하고 연출하는 스몰 웨딩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신이 꿈꾸던 모습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스몰 웨딩이 흔하지 않던 오래전 결혼했지만, 지나고 보니 나는 왜 고민 없이 남들이 만들어 둔 형식을 그대로 따라 했는지 좀 아쉽긴 하다. (물론 변명의 여지는 많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양가의 물리적 거리에서 내 주거지가 아닌 곳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아빠가 갑작스럽게 입원하고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결혼식 준비에 전념할 수 없었다. 셋째 딸을 보내는 우리 집과 달리 아들의 결혼이 집안의 첫 혼사였던 시댁 어른의 입김이 너무 셌다. 예식장과 주례까지도 손수 정해주실 만큼. 뭐 이 정도로 합리화를 해 본다.)


돌잔치와 결혼식 외에 상부상조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곳은 장례식이다. 탄생, 결합, 죽음이라는 인생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밤새 함께 있어주며 하릴없이 고스톱 치고 술을 마셔야 돈독한 우정을 증명하는 듯했던 장례식도 상주를 위로하는 잠깐의 머무름으로 달라졌다.


특별한 날의 문화가 달라지는 것은 뿌린 만큼 거두어야 한다는 왜곡된 상부상조가 만든 허례허식이 달라지는 신호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상당 부분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그 이전에도 이런 변화는 충분히 감지되었다. 그런데 장례에 있어서는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자칭 '임종 감독'이 있다. <죽음이 품격을 입다>의 저자가 제안하고 실천하고 있는 죽는 자가 중심 되는 새로운 장례 문화가 놀랍도록 신선하다. 왜 이런 걸 이제야 알았을까? 수목장 묘지지기이기도 한 저자가 목사라는 데서 이유를 찾아본다. 변명 같지만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므로,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움직임을 놓쳤다고 해두자.


책 내용 중 많은 부분에 인용되고 있는 성경 말씀을 나는 모른다. 글의 맥락과 저자의 활동으로 그 의미를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종교를 떼어내고도 공감의 여지는 크다. 진작에 알았더라도 엄마를 그렇게 보내드리지는 못했을 테지만, 내가 죽을 때는 결혼식 때 못 해본, 내가 기획한 장례식이라는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평생 가까운 몇몇 사람과만 친분을 유지한 내향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인간이 죽을 때라고 관심을 받고 싶을 리는 없다.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나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가진 것들을 정리해서 세상에 머물렀던 흔적을 최소화하고,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생을 마무리하면 어떨까.


장례식은 하지 않아도 좋다. 낯선 이에게 몸을 맡겨 염습을 하지 않으면 더 좋다. 기력이 다 하기 전 갈아입은 편안한 내 옷차림 그대로 가루가 되어야지. 공원 묘원의 구획된 수목장이 아니라 정말 자연의 일부가 되는 한자리에 묻혀서 아이들이 내 생각이 날 때 떠올릴 수 있는 풍경으로만 남아도 좋겠다. 관리를 신경 써야 할 묘지 대신, 곁에 두고 나를 느낄 수 있는 유품은 하나씩 남기는 것으로 끝내자. 두려움에 떨지 않는, 고요히 마지막을 기다리는 품격 있는 죽음. 막연하지만 그런 엔딩을 그려본다.


내 장례식에 대한 기획과 연출을 직접 한다 생각하니 죽음이 그리 무섭지만은 않다. 품격 있게 죽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이 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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