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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Nov 20. 2023

<The Giver>

우리 모두는 유일무이한 The Giver.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비룡소, 2020.>




제한된 관심사와 편협한 독서의 한계를 갈수록 깊이 느낀다.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버거운 때는 분명히 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 가족을 이루고, 철저히 나에 의해 생존과 성장이 가능한 아이들을 돌보는 기간은 가장 창의적이면서도 어두운 시간이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갓난 아기를 사람으로 키워내는,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일을 하던 시간은 역설적으로 책, 영화, 음악 등 모든 예술적 창조와 가장 먼 곳에서 자신의 돌봄조차 잊고 사는 암흑기이기도 하다. 세상 엄마들의 우울과 고단함은 생명을 기르는 기쁨과 별개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데서 온다. 그 버거운 일상을 지나고 나니, 세상에는 내가 간과했던 많은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놓친 것들이 흘러넘쳐 지금이라도 붙잡아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인다.


내 일상에 갇혀 다양성을 잊고 살아왔던 것 같다. 가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자극을 만나면 단조롭고 흔해 빠진 모양새로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익숙해진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삶은 다양성을 잃고 남들을 닮아간다.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최선이 되는 안일함이 미덕이 된다.


특별히 좋지는 않아도 걱정거리 없이 하루하루를 살 수 있다는 건 분명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인생이 그런 회색빛 안일함만으로 이루어진다면 인간다움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희노애락애오욕을 느끼고,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선택과 책임으로 생을 가꾸어 가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삶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무사안일이 아니라 다이내믹한 일상 덕분이다.



'The Giver'. 한국어 번역 '기억 전달자'.

오래된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기억이 제거된 사회. 주어진 역할과 정해진 규칙 속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는 세상. 그곳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이다.


원로들이 만든 규칙으로 철저히 통제되는 평화롭고 문제없는 이 회색빛 세상에서 색깔을 보기 시작한 조너스는 마을에서 유일한 기억 보유자로 선출된다. 인간사 모든 감정과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전달받으면서 조너스가 느낀 것은 무엇일까? 사랑, 희망, 감사, 행복, 아픔, 고통, 좌절, 그리고 죽음까지 모르고 사는 게 좋을까, 힘들어도 껴안고 사는 게 좋을까?


누군가 탄생의 기쁨을 축하할 때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음을 비통해한다. 실망과 실패로 눈물짓는 사람이 있다면 또 어딘가에는 희망과 성공에 환희하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감정과 다양한 경험으로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생을 일구어 간다. 그것이 사라진 조너스의 마을에서 유일하게 인류의 기억을 가진 'The Giver'는 

어떤 마음으로 한 평생을 살아왔을까? 이제 막 그 기억을 전수받으며 삶의 역동성을 이해하기 시작한 조너스가 죽을힘을 다해 구하려 했던 것은 '임무 해제'를 앞둔 아기의 생명이다. 울음이 통제되지 않아 공동체에 살아남을 없게 된 아기를 구하려는 조너스의 의지는 인간의 존엄이 쓸모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생명이 있다는 것 자체로 인간의 존재는 가치를 지닌다. 나를 돌보지 못해 지쳤던 지난한 육아 기간이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는 것도 오로지 나의 돌봄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을 기르고, 그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던 자부심 덕분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존재함 그 자체로 우리는 많은 것을 누리고 베풀 수 있다. 'The Giver'는 판타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다. 아이들은 존재 그 자체로 엄마로 살아온 내 삶에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세상이 중시하는 부나 명성을 갖지 못한 내 존재도 그 모습 그대로 아이들에게 세상 전부와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존재 가치는 남편과, 원 가족과, 친구와 타인에게로 이어진다. 우리 각자는 모두에게 존재만으로 'The Giver'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살다가 넘어지고 다치고 고통스러워도 좌절하지 말자. 내가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의미와 가치를 주는 존재임을 잊지 말자. 오늘의 우울과 실수가 내 존재 가치를 깎아내릴 수는 없다. 온갖 감정을 느끼며 살아있음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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