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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Nov 21. 2023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구멍 많은 나도 알고보면 괜찮은 어른

<이치다 노리코 지음, 황미숙 옮김, 드렁큰에디터, 2020.>



몇 년 전,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어쩌다 어른'이라는 제목의 강연 프로그램을 보았다. 강연자의 말솜씨도 채널을 고정하는 데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프로그램 제목이었다.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콕 집어 표현한 말이 있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세월이 쌓여가면서 늘 내가 과연 '진짜 어른'일까 하는 의구심 들었다. 때가 되어 남들이 하는 인생의 절차를 따라 무난하게 살아가다 보니 어른의 나이가 되어 있을 뿐, 내면의 자아는 청춘이라고 불리던 20대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듯했기 때문이다. 무늬만 어른인 채로 여전히 서툴게 일상을 이어가는 내가 바로, 어쩌다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는 느낌처럼 다가오는 제목이 과연 그런 의도로 사용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지금은 '어쩌다 ~'의 유사 제목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제목 덕은 톡톡히 본 게 틀림없다.


사람들의 마음은 다들 비슷한가 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 나이의 생은 처음 살아보는 시간들이다. 그러니 숫자로는 어른이 된들, 처음 겪는 일은 어린이처럼 서툴 수밖에 없다. 처음 아이를 낳을 때가 딱 그랬다. 30대 중반으로 접어들 때이니 제법 늦은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아기 키우기의 어려움은 체력과 정신이 바닥을 치게 만들었다.

 

출산과 육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 날마다 겪는 많은 고민과 선택의 순간에는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걱정과 불안의 감정이 휘몰아친다. 비슷한 듯 보여도, 늘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흔들리는 마음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위장술이 조금은 늘어가는 것 같다. 다 큰 어른이 사소한 일로 고민하고 있다는 걸 들키는 것이 부끄러워 혼자 끙끙거리거나 아닌 척, 괜찮은 척하며 사는 거다. 어른으로 사는 건 그렇게 피로하다. 그러니 자주 지치고 우울해진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쓸데없는 오기나 욕심을 내려놓게 되는 장점도 있다. 남의 시선에 조금 무뎌지기도 하고, 자신의 장단점을 너무 잘 알게 되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할 줄도 알게 된다. 남들도 괜찮아 보이는 것일 뿐, 실은 나처럼 자신 없고 때론 무기력하고 때로는 부끄러운 일상의 일들을 겪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나에게 관대해지는 만큼 타인의 실수에도 너그러워진다.



프리랜서 작가인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의 저자도 나와 비슷한가 보다. '일, 관계, 일상, 스타일'이라는 네 가지 범주의 34개의 꼭지들이 하나같이 내 마음에 쏙 든다.

혼자서 모든 것을 잘 해내서 인정받으려던 마음이 '완벽주의 추구병'임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일상의 기록 속에 나를 '어설픈 완벽주의자'라고 칭해왔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진다.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게 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내 욕구를 이해하고, 

남들은 사실 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깨달음으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다.


'쓸데없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혹시 몰라서' 이것저것 준비했다가 결국 활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음도 내려놓을 줄 알게 되었다. 모두 불안에서 비롯된 '열심히'와 '준비'였다. 어떤 일에 직면하든 과감하게 헤쳐나가는 자신감이 부족한 탓에 걱정하고 움츠러들고 벽을 쌓고 살았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듬어주려 한다. 생각 속에 머물러 아무것도 행동하지 못하는 나약함이, 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설프고 구멍이 많기는 해도 나는 맡은 일에 책임도 질 줄 알고, 착한 사람 콤플렉스인지는 몰라도 남에 대한 배려심도 발휘할 줄 안다.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칠까 걱정하는 자의식 과잉의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메타인지능력도 장착했다. 늘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열등감은, 관심 영역을 공부하고 자격을 취득하는 방향으로 성장 동력이 되었다.


심리학의 열풍으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약점 때문에 생기는 긴장과 불안정감, 그리고 님보다 열등하고 하위에 있다는 사실을 참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열등 감정을 극복하거나 보상하여 우월해지고 위로 상승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한다. 아들러에 따르면, 인간이 느끼는 열등감은 성취를 위한 초석이 된다."*고 했다.


아들러 심리학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스스로 부족하다는 느낌, 열등감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들 그런 마음으로 힘들어하고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거니까, 때로 혼자 뒤처지는 불안감이 밀려와도 괜찮다고 말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단점이 많지만 뒤집어보면 그것이 나를 주저앉게 만들기보다  노력하는 에너지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를 인정하면서 나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과 어른이 되어 시작한 것이 교차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일상이 조금 더 윤택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청소년 상담 2판>, 김춘경, 이수연, 최웅용, 강영배 공저, 학지사, 2022, p.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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