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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Nov 23. 2023

<우울한 마음도 습관입니다>

내 진짜 마음 알기

<내 감정을 책임지고 행복한 삶을 사는 법 ; 박상미 지음, 저녁달, 2023.>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소개를 할 기회가 종종 생긴다. 어렸을 때 학년이 바뀔 때마다 돌아오는 자기소개 시간이 그렇게 부담스러웠다. 숫기 없는 내향적인 성격에 남들 앞에 서서 모두의 시선을 받는 것도 싫었지만, 더 불편한 것은 나를 소개할 적절한 말들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번 나보다 먼저 자기소개를 한 아이들을 흉내 내어 짤막한 말로 내 존재를 드러낸 후, 자리에 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어린 마음에 학교만 졸업하면 그런 거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웬걸, 생활 반경이 넓어지고 스스로 인생을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되니 말이든 글이든 자기소개를 하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것도 남들을 흉내 내서는 곤란하다. 자기소개를 제대로, 잘 해야 서류전형도 면접도 통과할 수 있다. 학교에서 하는  쓸데없어 보이는 많은 것들이 다 살아가는 데 쓸모가 있음을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기소개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뭘까? 답답함은 질문으로 남는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남들의 자기소개를 들으면 다들 능력도 있어 보이고  떨지도 않고 당당해 보이는데 나는 내 순서가 오기 한참 전부터 속으로 뭐라고 말할까, 목소리가 떨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느라 앉은자리가 불편하다.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졌고, 남들과 다른 나만의 특징도 잘 아는 어른이 되어서까지 자기소개가 불편한 것은 자신감의 문제였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운 까닭이다.


그래서 고민 많던 청춘의 한때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아는가? 생각 많은 내향인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끝없는 내적 방황이 시작된다는 걸.

늘 부족함이 많고 아는 게 없으니 더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며 자신을 깎아내린다. 괜히 덤볐다가 실수하고 실패하면 내 마음이 상처받고 더 작아질까 봐 도전 앞에서 망설였다. 그렇게 쉬워 보이고 편한 길만을 찾아 안온하게 살아온 날이 나쁘지는 않았기에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갈 거라며 적당히 타협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다.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아니었다. 내 존재 가치에 대해 고민이 많기는 해도, 내 자유의지와 선택을 믿고 그 결과에도 책임을 지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임을 알았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도 남들 얘기는 참고하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지켜나가는 나름 소신 있는 엄마다. 내 방식으로 키운 아이들이 예의도 있고, 사교육 없이도 공부 잘하고, 원만하게 크고 있으니 양육 자존감도 높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프게 알면서 나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살았다.


그렇다면 나를 구석에서 조용히, 그러나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온 그 자신감이라는 것은 뭘까? 왜 나는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 자존감이 낮은 거라고 생각했을까? 존재 가치를 깎아내릴 게 아니라 내 감정을 들여다봐야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박상미 교수의 따뜻하고 유쾌한 위로를 좋아한다. 진심이 느껴지는 공감의 말과 자신감을 북돋우는 심리 처방도 유용하다. 상담실을 찾지 않아도 책으로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녀의 에너지에 물들어 기운이 난다. <우울한 마음도 습관입니다> 역시 그러하다. 이 책을 통해 자기소개에서 비롯된 존재의 고민과 심리적 불편함이 내가 에코이스트(echoist)이기 때문임을 알았다.


착한 아이로 살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도, 부족한 게 많다고 여기고 열등감에 시달린 것도 내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니 이해가 간다. 열등감이 나쁜 게 아니라 우월성을 추구하는 동력이 된다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나, 자아실현 경향성을 바탕으로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로저스의 인간 중심 상담이론을 좋아하는 것도 나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박상미 교수가 이시형 박사와 함께 추구하는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가 내 존재 의미를 가치 있게 여기게 한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든 사회에서 만나는 타인이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나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 수는 없다. 그게 싫어 무인도에 간다 한들, 처음에야 누구의 시선이나 평가도 받지 않고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것 같겠지만 머잖아 아무도 없음에 외로워하고 무인도로 찾아들어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 모든 관계가 얽히고설킨,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은 애증이다. 좋으면서도 싫은 이중성을 벗어날 수 없다. 모두가 나와 같지 않으므로 당연히 스트레스를 겪는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걸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내 감정을 알아차려야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다.


수시로 찾아오는 우울과 무기력이 습관이란다. 연습하면  쉽게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가라앉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를 돌보는 일이 필요한 순간이다. 나를 잘 알면, 그런 나를 편안하게 인정하고 나면, 내 소개를 하는 일이 조금 편안해지지 않을까?


한 달 전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작가 승인 과정에도 '자기소개'가 필요했다. 브런치에 가입하고도 몇 년, 작가 신청을 하지 못한 것은 잘 쓴 글들 앞에서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까짓 거, 안 되면 어때 하는 심정으로 한달음에 써 내려간 300자 자기소개를 보내고도 여러 번 고쳐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의 찌꺼기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축하 메일을 열어보고 아차, 싶었다. 몇 년을 미루어 온 일이 이렇게 간단히 이루어지다니. 그간의 미루기가 내 낮은 자신감의 지표였다는 생각에 마음에 찬바람이 일었다. 


그리고 알았다. 자기소개가 부담스러웠던 건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처음 만나 자기소개를 하면서 욕심이 많았던 거다. 천천히 나를 알아가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힘 빼고 편하게 썼던 자기소개가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욕심 대신 진심이 담겼기 때문일 거다.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 마음을 앞세워야 함을 그렇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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