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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Dec 10. 2023

<위로의 책>

겸손하되 고귀하게,  지금 이대로 충분한 당신과 나.


<매트 헤이그 지음, 정지현 옮김, 비즈니스북스, 2022.>



프랑스 심리치료 전문가인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책 중에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이 제목에 마음이 끌리고 눈이 크게 뜨인다면 당신도 나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생각이 많은 것은 사려 깊고 신중하며 실수가 적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생각이 '너무' 많으면 삶이 좀 피곤해진다. 쓸데없이 많은 걱정과 불안으로 자신을 괴롭히거나 괜한 오지랖이 되어 남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마음의 문제인가 싶어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심리학을 공부했다. 심리학은 마음은 나의 것이며, 어떤 마음을 먹느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선택하는 것은 나다. 너무 많은 생각이 마음을 향했다가 이제 마음의 문제는 '나'라는 존재의 문제로 변주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저자가 쓴 에세이집 <위로의 책>은 이 끊임없는 생각의 변주에 잠시 멈춤의 시간을 준다. 저자는 많은 철학자의 이야기를 끌어와 짧은 글들로 마음을 위로하려 한다. 철학이라니, 그도 나처럼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존재의 문제를 탐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죽음까지 떠올리게 만드는 마음의 고통을 겪은 저자는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한 뒤, 그 고통의 크기에 비례하는 만큼 삶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심리학으로도 모자라 다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걸까!



분명한 진리


당신은 지금 여기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위로의 책>, p.164.)


 

이 책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한 마디로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이 짧은 페이지에서 느껴지는 것,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라는 단순하고도 거대한 화두를 꼽겠다.


'지금, 여기'는 고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니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화는 예측할 수 없다. 그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는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하거나 후회하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 역시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을 혼란으로 받아들일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통제할 수 없지만 지금 현재 나의 선택으로 질서를 찾아간다. 열심히 노력하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행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지금의 만족과 행복을 밀어 두고 애쓰듯 살아간들, 미래는 불확실하다. 다만 선택하고 그 결과를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이야기한 선조들은 이미 그것을 깨우쳤기에 지금 할 일을 하고, 그저 기다리라고 한 게 아닐까.


불확실성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일깨운다. 어설픈 완벽주의자인 나는, 완벽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불확실한 미래를 불안해하며 스스로를 옭아맸다. 지금 할 일을 생각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걱정하고, 그 와중에 과거의 일들을 굳이 끄집어내어 자책하고 후회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생각에 쫓겨 무엇인가를 해야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생산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위로의 책, p.234.) 하려고 했다. 완벽과 시간에 대한 강박으로 내 삶을 통제하려 한 어리석음을 내려놓아야 함을, 지금, 여기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충분함을, 생을 끝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저자가 건네는 위로를 통해 다시 깨닫는다.



나이가 드니 배우지 않아도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존재론을 철학으로 접근하면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어렵지만 내가 살아있고 살아가는 이야기로 환원하면 쉬워진다. 모든 진리는 단순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어서 오히려 시시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자.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나는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아간다. 그 흐름은 내 통제 영역 밖이니 너무 애쓰지 말자. 통제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으면 삶은 한결 단순해진다. 다만, 내 삶에 대한 예민함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시간은 강물처럼 쉬지 않고 흘러간다. 두 번 다시 같은 물속에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걸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깨어 있는 예민함이 필요하다.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 



너는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겸손하라.

너는 별들로 만들어졌으니 고귀해져라.

- 세르비아 속담 (<위로의 책>, p.276.)



많은 생각들로 마음이 괴로울 때, 오히려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자. 겸손하되 고귀한 모습으로, 이대로 이미 충분한 나로 지금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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