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샘 Feb 20. 2024

<콰이어트>

내향인으로 잘 사는 법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22.>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만큼이나 흔한 세상이다. 자신을 사랑해야 진정으로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도 한다.

말은 참 쉽다. 남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신을 아끼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 더 어렵다.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면 촌스럽고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은 뭔가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일까, 자신을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의 마음병이 그리도 흔해졌다.


나는 내향인이다. 그것도 아주 전형적인 내향인이라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가 참 어렵다. 그 '전형적 내향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상황은 '남 앞에서 말하기'다. 겪어본 사람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이 대중 강연은 고사하고 발표나 토론, 자기소개 같은 공적인 말하기를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 


할 말을 적은 종이를 들거나, 다른 사람 발표 때 자기가 할 말을 궁리하지 않고는 불안하다. 미리 준비를 했더라도 긴장감에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부터 목까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게 몸으로 느껴질 정도다. 어찌어찌 말을 끝내고 나도 그전부터 쿵쾅거리던 심장이 진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제자리를 찾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때부터 냉철한 내면의 비판자가 머릿속에서 튀어나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씩 곱씹기 시작한다. '너, 긴장해서 말 속도가 너무 빨랐던 거 아니야? 목소리가 작다는 걸 알면 좀 더 크게 말을 했어야지!'부터 시작해서 중언부언, 횡설수설, 논리적 비약 등이 있지 않았는지 따지고, 뒤늦게 떠오른 좋은 생각에 후회 가득한 탄식이 이어진다.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내는 순간까지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머릿속으로 재연하다가 경황없는 중에도 눈으로 훑은 청중의 눈빛과 태도가 생각나 다시 한번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한다.

늘 그렇게 제3의 눈이 나를 따라다닌다. 좋은 말로 메타인지, 까놓고 말하면 자의식 과잉이다. 이러니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콰이어트>의 저자 수전 케인도 내향적인 사람이다. 명성만큼이나 대중 강연을 자주 하는 그녀에게도 공적인 말하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대중 강연 공포증은 고 반응 신경계를 타고난 사람들에게 한정되지 않는, 원시적이고 본질적인 인간의 특성인지 모른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글을 토대로 한 어떤 이론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사바나에 살 때, 주의 깊게 관찰당한다는 것이 오직 한 가지를 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물에게 추적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곧 잡아먹힐 것 같을 때, 우리는 똑바로 일어서서 자신 있게 말을 늘어놓을까? 아니다. 우리는 도망친다. 다시 말해서, 수십만 년 동안 진화는 우리에게 무대에서 당장 내려오라고 촉구했다. 청중들의 시선을 포식자의 눈빛으로 착각할 소지가 있는 탓이다. 하지만 청중은 우리가 그 자리에 있기를 기대할 뿐 아니라, 느긋하고 자신 있게 행동하기를 바랐다. 생리와 규약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강연이 그토록 무시무시한 한 가지 이유가 된다. 그리고 청중이 옷을 벗고 있다고 상상하라는 조언이 긴장한 연사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벌거벗은 사자나 멋지게 차려입은 사자나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니까. (<콰이어트>, pp.187-188 중 일부)



책의 서문에서 그녀는, 이 두꺼운 책에서 독자가 오직 한 가지 통찰을 가진다면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것이길 바란다고 했다. 그런 생각이 우리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장담까지 한다. 정말일까?


오랜 시간에 걸친 경험과 인터뷰, 관찰과 조사를 토대로 들려주는 다양한 사례를 보면 믿어도 될 듯하다.

외부 자극에 민감하고, 자주 얼굴이 빨개지고, 남들에게 관찰 혹은 평가받을 때 유독 힘들지만, 섬세하고,  감정이입을 잘하며, 인내심이 있고, 물질적인 것에 덜 유혹받고 양심적이기도 하다. 남들 앞에 나서거나 유머러스하지 못해도 편안함을 느끼는 환경에서는 충분히 웃고 수다도 떤다. 지루해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오랜 시간 몰두하는 집중력과 통제력도 있고, 때로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과감해지기도 한다. 책에 나오는 사례들을 읽으며 나의 내향성이 가진 많은 장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바꾸기 어렵다면 힘들게 외향성을 따라 하지 않아도 좋다. 큰 목소리와 몸짓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도 있고, 조용하게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조용한 힘을 발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수시로 자신감이 바닥을 치지만 다시 회복하는 것은 나를 향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내향인에게 전하는 저자의 말을 다시 읽어본다.



여러분이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재능을 활용해서 플로(flow)를 찾아라. 여러분에게는 인내력과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 다른 사람들이 걸려드는 덫에 걸리지 않는 밝은 눈이 있다. 돈이나 지위와 같은 피상적인 보상의 유혹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사실 여러분에게 가장 큰 도전은 자신의 장점들을 조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여러분은 어쩌면 열의에 차고, 보상에 민감한 외향적인 사람처럼 보이려고 지나치게 애를 쓰느라 자신의 재능을 과소평가하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에 집중할 때, 아마 자신의 에너지가 무한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자. 느리게 천천히 가는 방식이 좋다면, 다른 사람들 때문에 경주를 해야 한다고 느끼지 말자. 깊이를 즐긴다면, 넓이를 추구하려고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자. 멀티태스킹보다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면, 그런 방식을 고수하자. 보상에서 비교적 자유롭기에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헤아릴 수 없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한 독립성을 좋게 활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콰이어트>,  pp.290-291 중 일부)



느리고 우직하게 사는 게 미련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본성을 거스르는 삶은 더 힘들다.

유설화 작가의 <슈퍼 거북>이라는 그림책도 그런 얘기를 전한다. 토끼를 이긴 거북이가 사람들의 환호에 등 떠밀려 더 빨리 달리려고 애쓴다. 그 스트레스를 누가 알까? 차라리 토끼에게 다시 지고 마는 것이 편안한 삶을 되찾는 비결이다.

<슈퍼 토끼>도 비슷하게 읽힌다. 거북이에게 져서 위축되고 좌절한 토끼가 '절대 달리지 않는 토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자신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어쩌다 보면 주변 상황에 휩쓸리기도 한다. 그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긍정에서 비롯된다.


내향인은 종종 자기가 가지지 못한 외향성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늘 그렇게 외향적으로 살라고 하면 차라리 동굴을 택할 것이다. 나로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는 것을 책으로, 경험으로 알게 된 까닭이다. 흔해진 말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그냥 '나를 받아들이는 것'쯤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몰 트라우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