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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Mar 06. 2024

<나는 매일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늘 삶을 앞세운다

<전신암에 걸린 60대 의사가 선택한 삶과 죽음의 방식 ; 이시쿠라 후미노부 지음, 최말숙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3.>



세상이 변하는 속도와 우리의 인식이 변하는 속도는 다르다. 그 차이 때문에 문화지체가 발생한다. 첨단 문명을 누리면서도 한편에서 고루한 생각을 버리지 못해 문제가 생긴다.

생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발전하면서 놓친 문제들이 많다. 크게는 지구 환경 변화로 인한 뭇 생명의 위기를 볼 수 있고, 작게는 나와 내 가족의 삶에서도 찾을 수 있다. 


수명이 길어졌다. 그에 대한 준비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아직 부족하다. 세상을 논하기엔 깜냥이 부족하니 개인의 문제를 고민해 본다. 그것이 곧 사회의 문제가 되는 걸 아니까.

오래 살려면 돈이 더 많이 필요하고, 제도가 규정한 은퇴 이후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마음의 부담도 커진다. 윗세대가 겪지 못한 초고령의 나이에 적절한 사회 문화적 기준과 서비스도 부족하다. 각자가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경험과 지식으로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느라 분주하다. 기대했던 여유로운 노년이 아니라, '신중년'이 되어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누군가는 늙어서도 생계를 위한 돈벌이를 해야 한다는 서글픔을 느끼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충분한 자본으로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재미를 느끼기도 할 것이다.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의 차이가 나이가 들어서도 크게 벌어지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노년이 더 불안해진다. 열심히 살아도 지금이 힘든데, 지금을 사느라 허덕이다가 나이를 먹어도 끝이 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일찍 지쳐버린다.


너무 멀리 갈 필요는 없다. 나이를 불문하고 아프면 그런 고민은 오히려 사치다.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부질없다. 막말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지레 먼 미래의 삶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 아니면 언제'라는 마음으로 미루던 일도 고민하지 않고 해치우게 된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하지 않는 쿨함도 장착하게 됨은 물론이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선택하는 일에 우선순위가 생기니 삶은 오히려 가벼워진다.



전립선암이 온몸의 뼈에 전이된 60대 의사가 있다. 충분히 배웠고, 의사로 일하면서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도 충분히 누렸을 것이다. 남들 눈에 성공한 인생이지만, 100세 시대를 살면서 너무나 젊은 나이에 죽을병에 걸렸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가 죽음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야기하는 책이 <나는 매일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다.


암 치료라는 것이 약이 잘 들으면 부작용이 있어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지만, 약에 내성이 생기거나 적절한 치료제를 만나지 못하면 금세 악화되기 일쑤다. 그 불확실성을 몸과 마음이 모두 감당해 내야 하니 모두가 두려워하는 질병이 될 만도 하다.

의사라도 병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저자가 겪는 고통은 암 환자들 모두가 비슷하게 겪는다. 그러나 저자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죽음을 대하는 담담한 태도다. 비록 길어야 몇 년밖에 못 살지만, 치매처럼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질병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과 인지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암에 걸린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태도가 돋보인다.


엔딩노트를 쓰고,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스스로 정리하고, 더 오래 살겠다는 욕심마저 내려놓으면 일상이 남는다. 그 일상 속에는 가족이 있고, 소소한 취미가 있고, 손주 등 하원을 돌보는 작은 역할이 있다. 힘이 닿는 데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먹을 수 있을 때까지만 먹고, 몸이 허락하는 만큼 남은 인생의 시간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 그렇게 지내며 어떻게 죽는 것이 나을지를 고민하는 저자의 마지막 시간들은 우리가 꿈꾸는 삶의 마지막이기도 하다.


수명이 길어졌다고 건강하게 오래 살지는 않는다. 종종 실종자를 찾는다며 알림이 오는 안전 문자를 보면 찾는 이는 칠팔십 대 노인이 대부분이다. 모르긴 해도 한순간 놓쳐버린 기억으로 집을 찾지 못하는 치매 환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을 잃어가고 어느 순간 누군가의 보살핌 아래서만 지내야 하는 노년은 두렵다.

딴 건 몰라도  치매는 걸리고 싶지 않다던 엄마는, 노인들이 치매 다음으로 걱정하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처럼 진단을 받고 짧은 몇 년을 더 살았으니 엄마도 조금씩 삶을 정리했을 것이다. 크게 가진 것이 없으니 몸은 분주하지 않았으나, 그 마음은 바빴을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을 앓으며 하루하루가 아까웠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시간들을 함께했다는 거다.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 노환과 병사가 아니더라도 사고사로 언제든 세상을 떠날 수 있다. 그러니 늘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한다. 남겨질 가족을 충분히 사랑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기꺼이 해내고, 부질없는 욕심들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잘 사는 것인가.

죽음은 늘 삶을 앞세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곧 잘 살겠다는 마음이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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