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정신 질환으로 의가사 전역한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경험적으로 그가 자살 시도를 했으리라 추측했다. 왜냐면 자대 배치를 받은 뒤엔 쉽게 의가사 전역을 승인하지 않거든.
내 후임 중 하나는 허리 디스크가 심해 의가사 전역을 해야 했다. 그는 사비를 털어 휴가 때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았다. 병사 휴가 관리를 내가 했기 때문에 알고 있다. (원래 간부 일이지만 가점을 조금 주는 대신 병사가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는 총기도 들기 힘겨워하고 방탄복도 입기 힘들어했다. 방탄복 자체는 무겁지 않다. 문제는 방탄판이다. 방탄복만 입으면 방탄이 되질 않는다. 방탄판을 끼워야 한다. 그런데 그 방탄판은 X나 무겁다.
그 후임이 일과를 하기 어렵다고 인력 충원을 해주진 않는다. 왜냐면 소대 총원은 변함없으니까. 그러면 나머지 소대원은 똑같은 일을 적은 인원으로 해야 한다. 소대 단위로 일과를 하면 하나쯤이야 티가 안 나지만 분대 단위로 일을 하게 되면 확실히 티 난다. 그러면 일을 하는 병사들은 같은 일을 적은 인원이 하니 짜증 나고 쉬는 후임은 후임대로 눈치가 보인다.
결국 우리 대대에서 그 후임에게 내려준 처방은 의가사 전역이 아니라 행정병으로의 보직 이동이다. 심지어 대대와 중대 단위 행정병은 이미 TO가 꽉 차서 소대 단위 행정병을 신설하고 거기에 후임을 끼워 넣었다. 정말 어메이징 코리아다. 집에 가야 할 애를 행정병으로 부리다니.
이 밖에도 의가사 전역을 해야 하는데 못한 케이스를 꽤 봤다. 그래서 안다. 어지간한 사유로는 집에 보내주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나는 그 친구가 자살 시도 정도는 했으리라 추측한 것이다.
일병 때, 예초 작업으로 인원을 차출한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보통 그런 게 있으면 짬밥 낮은 일병이 간다. 이병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함부로 보낼 수 없어서 군대 돌아가는 꼴을 아는 애 중 제일 짬 낮은 애를 보내는 거다. 그런데 해당 공문에는 상병 이상으로 보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공문이 내려오고 병사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타 부대에서 선임들이 후임에게 과도하게 짬을 때렸고 그 결과 일병 하나가 자살했단 거다. 마침 해당 부대에서 복무 중인 고등학교 선배가 있었기에 확인해 봤는데, 소문이 맞았다. 그리고 그 병사의 자살 소식을 어떤 뉴스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렇게 죽을까.
입대 전, 나는 군대에서 자기 계발하는 방법을 찾곤 했다. 전역 후, 나는 나보다 늦게 입대하는 지인에게 몸 상하지 않고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니 휴전 중이니 하는 말 다 맞다. 그거 인정 안 하는 거 아니다. 다 맞는데, 그렇다고 군대를 이 지경으로 굴리는 것이 온당하진 않다.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서 젊은이의 희생은 필수적이다. 그러면 모 정치인처럼 평생 그럴 거 아니지 않냐는 식으로 넘길 게 아니라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