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앞선 얘기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주제로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은 왕따의 경험이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다.
중학교 1학년 전학 후 담임은 반장에게 내 학교 안내와 적응을 도우라 했다. 다행히 반장은 좋은 친구였고, 반장과 가까워지며 그의 친구들과도 친해져 난 반장과 친구들 무리에 자연스레 섞였다. 하지만 눈치를 살피는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불편한 말일 수 있겠지만, 난 이 나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 중 학폭과 전혀 무관한 이는 없다고 본다. 가해자나 피해자 혹은 방관자다. 물론 학폭을 말리거나 소수자를 챙기는 아이들도 있다. 12년 동안 한 두어 명 본 것 같긴 하다. 내가 원하는 포지션은 방관자였다. 가해자가 되기도 싫고 피해자가 되긴 더더욱 싫었다. 학폭을 말렸다간 나도 휘말릴 수 있다. 그러면 남은 선택지는 방관자뿐이다. 논외의 이야기지만 학폭 사실을 알고도 반성문 한 장으로 퉁 쳐버린 그 시절 담임도 방관자라고 생각한다. 그때 30대 초반이었으니 지금은 40대 후반이거나 50대 초반쯤 됐겠지. 아마 지금도 교사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무리에서 버려지는 아이들을 챙겨본 적이 없다. 누가 누굴 왕따로 만들거나 폭행해도 방관했다.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알면서도 그랬다. 솔직하게 누가 어떤 경위로 버려지든 내 생존이 우선이었다. 양심의 가책이 없냐? 있다. 하지만 생존하지 못할 바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게 나았다.
졸업식 날 의례적인 행사가 끝나고 나는 누구와도 사진을 찍지 않고 돌아갔다. 부모님은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어차피 평생 볼 사이도 아닌데 라는 말을 덧붙이며. 당시엔 모든 관계를 그렇게 냉소적으로 대했다. 살아남기 유리한 애들과 친해지고, 적당한 선이란 걸 유지하고, 누군가 버려질 것 같다면 말리기보단 먼저 버리거나 방관했다. 내게 평생 친구란 건 소설 속의 이야기였고, 인간관계란 건 죄다 스쳐 가는 것에 불과했다. 친구란 건 오늘 친구였다가 내일 나를 왕따로 만들 수 있는 존재였다.
중학교 시절을 압축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정말 이게 다다. 매일 눈치 보다 졸업한 게 전부다. 나는 고등학교도 다른 지역의 학교로 진학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상태로 입학했다. 거기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깊은 관계가 형성되기 전까지 모든 관계를 냉소적으로 대했다.
지금도 완벽히 나아진 건 아니다. 내가 학폭 피해자인 걸 아는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 둘이 전부다. 심지어 그들에게도 20대 후반이 돼서야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하다 술을 하도 마시는 바람에 생전 처음으로 부모님이 차를 갖고 와서 나를 실어갔다. 나는 그날 기억이 없다. 실은 학폭 피해자와 스쿨 카스트라는 제목으로 쓴 모든 글도 어느 정도 취해서 적었다. 이십 대 후반이 된 지금도 맨 정신으로 그 기억을 마주할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이 문제의 해법을 모르겠다. 실마리도 못 잡겠다. 그저 언젠가는 학폭이란 것 자체가 옛말이 됐으면 한다. 이 정도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단 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