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만난 친구 B는 가난했다. 남의 가정사라 상세히 적긴 어렵지만 그의 집에 놀러 간 적도 몇 번이나 있고 그의 부모님도 만났으며 종종 같이 놀아봐서 안다. 그는 허풍으로 자신의 가난을 가리려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안타깝게도 아무도 속진 않았다. 다들 겉으로 속아주는 척을 했지. 자동차라 하면 BMW나 벤츠 같은 유명 브랜드만 알 적에 어디서 그런 걸 알아 온 건지 자신의 삼촌이 부가티를 탄다니, 그게 20억이 넘는다니 떠들었다. 거짓인 걸 뻔히 알면서도 얘기를 들어줘야 하는 게 짜증스러웠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럴 수 있지. 문제는 그의 성격이다.
그의 집에 처음 놀러 간 날이 기억난다. 우리는 그의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갔다. 문은 열려 있었고 거실엔 어머니가 계셨다. 그는 아랑곳 않고 온갖 욕설이나 음담패설을 했다. 그 나이대 애들끼리 있으면 온갖 상스러운 이야기를 한다. 뭐 친구끼리 모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부모님 앞에선 얘기가 다르다. 나와 함께 간 다른 친구와 내 눈이 마주쳤다. 둘 다 굉장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몇 번 자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멘탈이 정상이 아닌 데다 사춘기라는 합병증까지 온 나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전체적인 대화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가 너는 용기가 없어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나는 용기가 있어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 건 확실히 기억난다. 사실 이것도 필터링을 거쳐 소프트하게 만든 거다. 원래 그가 뱉은 말은 더 샜다.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일단은 친구니까 넘어가는 요상스런 관계가 됐다.
그와 멀어진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사춘기가 끝나간 건지 사회화가 진행되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게 정상은 아니고 좀 정상적으로 살고 싶단 생각이 강해졌다. 따라서 거리를 두었다. 이후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해 그의 근황은 잘 모른다. 사실 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지만 모르는 게 나은 소식뿐이라 적진 못하겠다.
남자들은 대개 비슷한 시기에 우르르 입대한다. 나와 내 동창들도 마찬가지라 입대 시즌에 오랜만에 동창 모임을 가졌다. 친구 B가 나오려나 생각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 B와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한 다른 친구에게 친구 B는 아직도 내 욕을 하고 다닌단 소식을 들었다.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관계를 단절해 그런 건지 아직도 날 원망하는 것 같더라.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얜 아직도 자기가 뭘 잘못한 건지 모르냐는 생각과 그래도 친구였는데, 내가 좀 신경 써야 했나 싶은 생각.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행동은 비상식적이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짜리 아이가 그렇게까지 망가진 걸 보면 아무래도 성장 배경이 괜찮진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정확히 사랑받고 자란 걸까. 나는 이 기억에 어떤 식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이제는 그가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