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핑 입문기
서핑을 했다.
새벽까지 언니와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떨다 몇 시간 뒤 있을 아침 10시 수업을 예약했다.
와인을 마시다 서핑을 하자고 제안한 P인 동생과 그 와중에 예약은 미리한 J언니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서핑 선생님은 외형부터가 고수의 냄새가 물씬 났다.
서핑을 못타는게 오히려 잘못되었다 느낄 것 같은 바이브...
선생님은 '나'답게 사시는 분들이었고,
그 모습이 너무 좋고 은근한 위로가 되었다.
센터에서 강습을 받고 본격적으로 서핑을 하러 바다에 갔다.
잘할리 만무하다. 그런데 너무 즐겁고 웃음이 난다.
서핑 선생님이 아기같다고 얘기를 하셨다.
첫 서핑에(호주에서 서핑클래스를 받았지만 한국에선 처음이다) 너무 신났고
물 속에 머리를 처박아도 마냥 재밌고 웃음이 났다.
언니와 나, 서로를 바라보며 온 얼굴이 바닷물도 뒤덮힌 채 웃는 모습이 정말 아이같다 느껴졌다.
때없이 티없이 순수한 모습.
'1년 뒤면 서른인데 아이같다니요 껄껄껄..' 이라고 했지만, 나 스스로도 내 모습이 맑아보였다.
좋았다.
몇달전 아니, 몇주전 아니, 그냥 며칠전 까지만 해도 이마에 주름지게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눈물흘렸는데
이렇게 무슨일없다는 듯 해맑고 행복하고 마냥 즐거울 수 있는걸까.
참 인생은 알 수 없고도 신기하고도 재미있다.
서핑을 하는 동안 근심 걱정이 파도에 씻겨나갔나보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서핑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도 웃음도 아이웃음이었다.
깔깔깔깔 하고 웃는다. 듣고 있으면 같이 웃음이 나는 웃음이다.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는 사람은 물리적 나이와 무관하게 순수하고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나보다.
아이처럼.
잘 타지도 않으면서 좋아하고
폼은 전혀 우아하지 않고 우스꽝스럽지만
그냥 좋아 웃음이 났다.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 같다고 했다.
와..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서울에 살 때 뇌에 있는 나사 전부를 너무 꽈아악- 쪼아서 사는 느낌이었다.
완벽하게. 빈틈없이. 강박적으로. 나사는 너무 조여져 내 머리를 항상 아프게했고 두통에 시달렸다.
하.. 나사를 좀 느슨히 풀고 살고싶다... 라고 생각했었다.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이라는 얘기가 좋았다.
오히려 풀린김에 완전히 빠져버려 삐그덕삐그덕 찌그덕 찌그덕 소리를 내며
그냥 모지랭이처럼 웃으면서 맑게 살고싶다.
나사하나 빠진 것 처럼 사는 것도 좋지요.
이 빡빡한 세상 속에 나사 하나 쯤 풀고 살면 행복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