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여행의 준비물은 능통한 언어와 체력이 아니라 용기야.
엄마의 다리 수술 이후 꽤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오래 걸으면 아파했지만 절뚝거림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인생은 그렇다.
있을 땐 당연하지만 사라지고 나서는 그 중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렇게 사랑과 다툼이 반복되던 평범한 어느 날,
아빠와 엄마는 금요일 저녁 함께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있었다. 기안 84가 영국을 여행하고 있었고, 엄마는 ‘나도 영어만 잘하면 저렇게 혼자 여기저기 여행하고 싶다.’ 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데 기뻤다.
엄마가 더 이상 해외여행도 못 갈 것 같고, 이젠 멀리 돌아다닐 수 없을 것 같다고 얘기했을 때 정말 엄마가 꿈을 접은 것 같았다.
내가 ‘체력이 약하면 쉬었다 가면 되고 천천히 가면 되지’라고 얘기를 했지만, 오랜 시간의 비행도 이젠 나이가 들어 힘들고 나이가 들면 여행도 너무 피곤하다. 부담스럽다는 말이 엄마의 진심인 줄 알았다.
건강과 관련된 이유니 강요할 수 없었다.
속상했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싶고, 새로운 나라와 공간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이것이 엄마의 진심이었다.
다시 한번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여행은 용기야. 능통한 언어와 체력이 아니라 용기만 있으면 갈 수 있어.
나랑 가자. 내가 가이드해 줄게.
거절 않고 기대감과 설렘을 내비치는 엄마의 모습에
부모의 말 중 거짓의 말 또한 존재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진심과 바람을 숨겨두고 현실과 자식을 위해 다른 반대의 말을 내뱉는 것.
사랑과 걱정을 숨기고 되려 짜증과 무심함으로 표현하는 못난 딸의 모습과는 또 다른 반대의 말이었다.
나는 나를 핑계 삼아 엄마와의 유럽여행을 제안했다.
당시에 나는 임용준비를 하고 있었고, 임용시험이 잘 되지 않으면 오래 공부하느라 수고했으니 나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러니 같이 가자고, 넉넉한 일정으로 쉬어가면 된다고 엄마를 꼬시며.
실제로 나도 엄마와의 유럽여행을 꼭 함께하고 싶었다.
2017년, 나는 휴학을 하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 투어를 했고 가이드님께서는 사그라다 파밀리에가 2026년 완공이 된다 하였다.
그때, 와 30대 때 그럼 완공된 사그라다 파밀리에는 꼭 가족과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늦은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를 통해 나 자신에게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엄마도 무한히 꿈꾸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무한히 꿈꿀 수 있는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었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가치를 엄마에게 전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