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주주총회 모습까지 바꿔 놓았다. 주요 대기업들이 온라인 주주총회를 개최하면서 흔히 말하는 주총꾼들도 보기 어려워졌다. 전자투표제도를 도입한 기업도 크게 늘어났다. 물론 온라인 주총으로 소액주주의 발언권이 제한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온라인 주주총회에도 의사봉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의사봉은 회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물건이다. 주주총회장이나 국회에서 의사봉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면 귀한 물건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의사봉을 3번 두드리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상법이나 국회법 어디에도 의사봉을 3번 두드려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몇 년 전 국회에서 상임위원장이 의사봉 대신 주먹을 사용해 책상을 두드리기도 했다. 2018년 부산진구청이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회의에서 의사봉을 없앴고, 지난해에는 경상남도가 의사봉 없는 회의를 도입했다. 2019년 3월에 열린 SK텔레콤 정기 주주총회장에도 의사봉은 없었다. 권위주의 분위기를 배제하고 주주들과 충분히 소통하기 위한 일종의 형식 파괴였다.
회의에서 의사봉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랜 관행이기 때문이다. 의사봉을 두드리면 참석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켜 회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3번을 두드리는데 첫 번째는 의결 내용을 구성원들에게 선포하는 의미, 두 번째는 의결 내용을 확인하는 의미, 세 번째는 의결 내용에 승복하겠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매년 2~3월에 열리는 주주총회에도 의사봉이 등장하지만 상법에는 의사봉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상법 제368조에는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의 수로써 하여야 한다'고 의결정족수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주주총회 시즌이 끝나면 소송이 크게 증가하는데, 의결 내용만 아니라 절차상 하자를 다투는 경우도 많다. 의사봉을 남용한 것이 소송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법률이나 내규에 명시된 절차를 지키고 구성원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성숙한 회의 문화가 정착된다면 의사봉 없는 회의장이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회의 주인공은 의사봉이 아니라 구성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