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흐름
쥐와 까마귀와 피
쥐를 죽여야 했던 때였다.
그는 내게 '당장 저 쥐를 죽여라.'라고 권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쥐를 발로 차 바깥으로 내보냈더랬다.
과거를 회상하며 길을 걷다가 한 공원에 들어서 커다란 은행나무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넓게 마련된 공간에서 몇몇은 운동을 하고, 또 몇몇은 축제를 하듯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췄다. 나는 그들을 구경하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기이하리만치 아름다워 그만 넋을 놓아 버렸다.
하늘의 중심은 중력이라도 작용하는 듯 볼록하여 빛의 굴절이 일어났으며, 그 주위를 맴도는 별들의 움직임은 마치 자신들을 삼키려는 블랙홀의 무자비함에서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 무척이나 잔혹하고 동태적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 그 광경을 촬영하고자 하였지만 돌연 별들이 커지더니 어둠 사이의 간격이 서서히 좁아지면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놀라서 확인하니 내가 본 것은 새까만 하늘의 별들이 아닌, 수많은 까마귀가 빼곡히 뒤덮은 사이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빛이었던 것이다.
그때, 까마귀 무리가 일제히 내려와 빠른 속도로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피하지 않으면 똥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내게 똥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까마귀들이 공원의 모래를 휩쓸고 간 덕분에 그것들의 움직임을 뒤쫓는 모래알들이 내 뺨을 스쳐 따갑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모래알 틈으로 그것들의 깃털이 설핏 보였다.
그것들은 공원 가운데서 이동을 멈추고는 겹겹이 쌓여 먹구름을 만들었다. 나는 이번에는 저것들을 피하겠노라 결심하며 한쪽 모서리의 작은 은행나무 밑에 섰다. 그렇게 한숨 돌리던 찰나,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가운데서부터 시작된 비명은 내게 점점 가까워지더니 핏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과정이 번개가 내리친 뒤 천둥이 뒤따라 오는 것처럼, 비명이 피를 몰고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패닉 상태가 되어 그 재난 아래에서 무력하게 서 있었다. 쏟아지는 핏덩이들 사이로 툭 툭 하고는 까마귀의 검은 사체가 떨어졌다.
개인의 큰 행동이 패닉을 가중시킬까 두려워 최대한 침착하게 있던 나였지만 그 상황에서 혼자인 게 무서웠던 나머지 제일 가까이 보이는 한 남자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는 무어라 불평을 늘어놓으며 멀어져 갔다. 나는 그에게서 밑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 옷은 어느덧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대피령
유례없는 재난에 대피령이 떨어졌지만 나와 친척들은 외딴섬에 위치한 할머니 댁에 모여 재난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할머니의 방에서 이불을 덮고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한 마리의 거미를 잡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약삭빠른 거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나를 약 올리는 것이었다. 거미를 맹렬히 쫓고 있으니 이윽고 꼽등이마저 들어왔다. 나는 벌레들을 이길 재간이 없어 가족들이 있는 마당으로 도망쳤다.
또 한 번의 거대한 돌풍이 몰아치자 산중의 꽤 고지대에 위치한 할머니 댁마저 흔들거렸다. 거센 파도로 전봇대에 불이 붙는 것을 목격한 나와 내 사촌들은 마음속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깊은 불안감에 전율하고 있었다. 우리의 이런 불안한 감정이 퍼지는 것을 형상화라도 하려는 듯이 전봇대 꼭대기에 붙은 불은 순식간에 번져 전봇대의 모든 부분을 휘감아버렸다. 결국 불길을 이기지 못한 전봇대는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 우리는 그 잔해가 우리에게 튈까 두려워 마당의 중심부로 피하였다. 그곳엔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계셨고, 다른 친척들과 사촌들이 먼저 피해 있었다.
할머니 댁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데다가, 마당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깥 상황을 파악하려면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어 내려다봐야 한다. 그렇기에 마당 중심에 서 있는 우리는 그 높이를 뚫고 올라오는 불기둥 같은 큰 사건이나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이지, 자잘한 사건들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또 한 번의 거대한 돌풍이 몰아치자 방금의 전봇대 폭발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불길이 버섯 모양으로 휘몰아쳐 올라왔다. 폭발, 굉음, 지면의 흔들림, 이 모든 것이 아우러져 우리를 짓누른다. 공포에 질린 나는 실내로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삼촌이 뒤에서 내 어깨와 팔뚝을 단단히 부여잡으며 “모든 죽음은 밀폐된 어둠과 연관되어 있어!”라고 소리쳤다. 순간, 폭발의 여파로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음을 맞이하는 나의 모습이 뇌리에 떠올라 발길을 멈췄다.
불길이 조금 사그라들자 우리는 폭발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시선이 닿는 그 끝에는 거대한 증기선이 불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