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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Aug 02. 2023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엉덩이가 복슬복슬!

영화 리뷰.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휘파람과 함께 <황야의 무법자>가 자동 재생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음악 작곡가 중 하나다. 나는 이 영화를 이태리판 <트럼보> 같으리라 생각하면서 포스터를 보고 “와 이 배우 엔니오 모리코네랑 진짜 닮았다!” 감탄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였다.

어린 시절 의사가 되고 싶었던 엔니오 모리코네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트럼펫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유명 음악학교에서 온갖 춤곡을 섭렵하며 작곡을 배운 뒤에 그 시절 유행하던 불협화음 음악과 아방가르드한 음악사조를 쫓기도 한다. 이때의 영향으로 그는 깡통 소리, 박차 소리 등의 소음으로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그가 이 대목을 설명할 때 나는 정말 혼이 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배운 걸 써먹기는커녕 엉뚱한 짓만 하는 편이다. 그리고 금방 까먹는다. 하지만 천재인 그는 클래식이든 재즈든 전위음악이든 배우면 배운 데로 죄다 써먹는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곳곳에 "선율에 대위법까지 사용했다"(맞나? 음악을 모르니까 기억도 잘 못하겠다)는 식의 대목들이 계속 나온다. 또 한동안 그는 영화 화면을 보며 바로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곡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지만 역시 트럼펫 연주자였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즉흥 연주를 따라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그의 일생의 전반이 지나고 나면 드디어 <어바웃 타임>의 유명한 삽입곡 “il mondo”가 나온다. 이 아름다운 곡도 그가 편곡한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일 몬도"의 꼬투리만 듣고 벌써 눈물을 발사할 준비를 한 것 같다.

옛날 우리나라의 무협 영화들이 중국을 배경으로 제작된 것처럼 이태리에서 미국 서부극을 만든 것을 따로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부른다. 싸구려로 인식되던 서부극은 이 순간부터 새로운 영화로 재 탄생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옛날옛적 서부에서> 등을 만든 영화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와 영화음악 엔니오 모리코네가 있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황야의 무법자>를 작업하던 당시에는 아무도 서부영화에 전자기타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서부영화는 엔니오의 음악을 빼고 생각할 수 없을 리만큼 그가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영화의 스토리에 새롭고 흥미로운 옷을 입혔다. 그의 음악은 영화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 영화들의 성공은 전적으로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덕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 번은 <샤이닝>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탠리 큐브릭이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영화음악을 제안했었다고 한다. 그러자 세르지오는 직접 큐브릭에게 전화를 걸어 엔니오가 자신의 영화 음악을 하고 있어서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세르지오와의 음악작업은 끝난 상황이었지만, 세르지오는 엔니오를 독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중에 세르지오는 시나리오를 쓰기도 전에 엔니오를 졸라 곡부터 받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받은 음악을 세르지오는 촬영 현장에서 계속 틀었는데 그 영화가 바로 <원스어폰어 타임 인 아메리카>라고 한다.

그리고 연이어 엔니오 모리코네의 손을 거쳐간 많은 영화들이 열거되기 시작했다. 모두 내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영화들이었다. 그러자 이 영화들과 관련된 기억도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드디어 내 눈물샘도 분수처럼 터졌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물이 흐르는 너무 좋아서 우는 그런 울음이었다. 내 눈물과 함께 펼쳐지는 영화들은 나와 엔니오모리코네의 “시네마 천국”이었다. <옛날 엣적 서부에서> <1900년> <천국의 나날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언터처블> <시네마 천국>까지. 너무나 좋아했던 영화의 장면장면들이 익숙한 그의 주제곡과 함께 펼쳐지는데 도무지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거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울었는데...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울 일인가?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딘가에 털이 잔뜩 나 있을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이태리가 프랑스와 함께 영화 강국이었던 시절의 편린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엔니오가 참여한 많은 실험적인 영화들이 잠깐 스치듯 지나간다. 새로운 화면을 창조하고,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더욱 새로워지기 위해 몸부림치던 실험적인 영화들. 현대 영화는 바로 이런 영화들로부터 배우고 영감 받아 그 자산을 개선하고 재창조하며 발전했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이 제작되는 시절은 호시절이다. 영화가 힘이 센 시대이다. 아쉽게도 이제 이태리 영화의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세계인들로부터 서서히 잊혀 가고 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지금까지도 이태리 영화는 <인생은 아름다워> <완벽한 타인> 등을 선보이며 가끔 나 아직 안 죽었다. 소식을 전하곤 한다.

엔니오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에게 아름다운 선율이 중요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의 음악은 그래서 멜로디가 너무나 아름답다. 또 그는 음악을 작곡하면 제일 먼저 아내에게 들려준다고 한다. 아내는 음악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아내를 첫 번째 관객으로 아내가 좋아 하는 음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 나의 어머니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자는 세 여자의 말만 잘 들으면 된다. 엄마. 마누라. 내비게이션."

좋아서 꺼이꺼이 울며 본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였다. 덩달아 거기 털도 도톰해진 영화관람이었다.

주연 배우가 정말 엔니오 모리꼬네와 똑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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