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슴하고 짭조름하고 씁쓸한 대화

왠지 시간차 데칼코마니.

작고 못생긴 대머리 결혼 20년 차와

크고 귀여운 뚱보 결혼 10년 차

그리고 더 크고 잘생긴 결혼 3년 차가

어느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함께 술을 마셨다.

아내 보다 나이가 많은 20년은 이제 아내에게 화를 안 내고

아내 보다 어린 10년은 이제 화를 좀 참을 줄 알고

아내와 동갑인 3년은 지금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진화하는 인류

3년이 이혼할지도 모른다며 울적했고

10년은 살다 보면 싸울 수도 있지!

20년은 무조건 꿇으라고 다그쳤다

3년은 아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 때문에 싸운다고 말했고.

20년은 아내에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는 전화를 다소곳하게 받았고,

10년은 삼겹살 더 먹을까, 아니면 이제 목살 먹을까 물었다.

20년은 술은 맨날 마시고 싶다고 투덜댔고

10년은 평생 취해본 적이 없다고 장담했다

속상한 3년은 안 마시던 술을 연신 홀짝였다.

20년이 결혼 생활에 대해 조언하면

10년이 그런 일 자기도 있었다고 말했고

3년은 그제야 20년의 말을 알아 들었다. 

20년은 취했고

10년은 안 취했고

3년은 취하고 싶었다.

집 나온 3년은 오늘 어디서 잘지 고민했고,

10년은 게임방에서 디아블로가 하고 싶었다.

이미 취한 20년은 그저 헤벌쭉 웃고만 있었다.

.......

히틀러는 브라운과 결혼하고 바로 다음 날 자살했다.

연합군이 히틀러의 벙커 코 앞까지 왔을 때였다.

결혼 다음 날 자살한 히틀러를 두고 사람들은

결혼이 이렇게 무서운 거라고 말한다.

어쩌면 히틀러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총통이 되기 전에 결혼을 했더라면

다른 나라와 전쟁은 꿈도 못 꿨을 거야.

아내랑 싸우는 게 전쟁보다 힘들어!"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히틀러는 죽을 땐 죽더라도 결혼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거라고.  

왜냐하면,

결혼은 그런 거다. 안 해보면 아무것도 모른다.

......

술집을 나오니 퍼붓던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손을 흔들며 뿔뿔이 흩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