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x fridman이라는 인터뷰를 전문으로 하는 유튜버가 있다. 나는 그가 AI 전문가와 인터뷰하는 것을 몇 개 봤다. 그 역시 AI분야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인터뷰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사려 깊은 생각을 전개하고, 상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해 주고, 또 정확하게 핵심으로 밀고 들어갔다. 게다가 웃음기도 거의 없다. 유머라고는 내용에서 발생되는 허탈함, 혹은 어떤 기대의 배신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마디로 유머도 고급지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만들었다. 정말 대단한 인터뷰이가 아닐 수 없다. (번역한 사람이 더 대단할 수도?)
그의 인터뷰를 보다가 문득 렉스처럼 영화에 대해 관계자와 이 정도 깊이로 인터뷰를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렉스는 쳇 gpt가 나왔을 때 바로 샘 알트만을 초청해서 3시간이나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이미 쳇 gpt가 가는 방향을 계속 따라가고 있었다는 뜻이다. 한 때는 나도 제작되는 시나리오를 초기 단계에서 종종 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업데이트를 하다가 영화가 만들어지면 할 얘기가 참 많을 것 같다.
하지만 한 해에 겨우 50편이 만들어지는 이 판에서 개발되다 사라지는 시나리오는 그 수십 배는 될 텐데 그걸 죄다 모니터링한다는 건 불가능하겠구나 싶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영화가 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나는 내 작품으로 회의를 해도 2시간이 넘으면 힘들어진다는 사실. 내 작품을 읽은 사람도 2시간 정도면 작품에 대해 할 말 다 했고, 나도 그 정도 하면 지치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작품 모니터를 할 때는 1시간이면 차고 넘친다. 상대는 내 이야기에 무수히 상처받고 억울해 죽을 지경일 텐데 이런 고문을 1시간 넘게 한다면 너무 지나치다.
분명 작품을 쓰는 기간은 몇 달, 때로는 몇 년이 걸린다. 그런데 왜 두 시간이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걸까? 어떻게 이런 씬을 썼나, 이 씬의 의미는 무엇인가, 씬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왔나, 왜 이런 씬이 필요한 것인가...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한다면 10시간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명백히 창작자를 취조하는 셈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이걸 보게 될 시청자를 생각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어떤 점에서 영화는 현재 세상을 장르에 기대어 반추(反芻)하는 분야지만, AI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를 창조해 가는 분야인 것 같다. 결국 영화를 가지고 렉스처럼 몇 시간씩 인터뷰를 하는 건 쉽지 않을 거 같다. (진정한 창조는 과학이 하는 것일까?) 영화 비평이 인상비평에 머무는 점이 늘 속상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lex fridman의 인터뷰는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인간의 세계는 인간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결국 필요한 로봇은 인간형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나, AI의 최종 진화는 AI 스스로 데이터를 생성하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을 때라는 이야기 등은 정말 대단히 놀라운 비전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견 없이 상대의 말을 듣고 깊이 이해하려고 하는 인터뷰이의 태도가 빼어나다. 이건 정말 하기 힘든 일이다. "의견이란 똥구멍 같아서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게 마련"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안이든 우리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쉽게 그 차이를 알아채고 불쑥 자기 의견을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 배설욕구를 참고 상대의 의견을 최대한 들으려고 하는 것, 최대한 접근하려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다. 때때로 괄약근은 자율신경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늘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자 애를 쓰지만 "저 개 똥 같은 소리를 내가 듣고 있어야 해?"라고 신호가 오는 순간 "내가 먼저 쌀 거야! 괄약근 개방!"을 기어이 하고 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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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자기주장이 강한 건 자존감이 낮아서라고?
"이런 ㅅㅍ! 괄약근 개방!"